[김순덕 칼럼]우리 곁의 狂信主義

  • 입력 2005년 11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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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다는 남자가 있다. 여자는 그 순수함에 반해 결혼했다. 당장 초원의 집을 지을 형편이 못 되면 씀씀이를 줄여 방 한 칸부터 장만할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남자는 초원만 헤매면서 남들 탓에 그림 같은 집을 못 짓는다고 외쳐 댄다.

이혼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여자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다.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소리 높이기, 남자가 그러거나 말거나 혼자 살림 꾸려 가기, 내 남자를 비판하는 남들을 욕하며 초원의 이상(理想)을 설파하기….

열린우리당과 ‘집권 386’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꿈을 꾸는 초원의 세력인 줄 알았다. 이제 보니 일부는 현실을 깨닫고 변화를 꾀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초원부터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친노(親盧) 그룹이 있어 대통령은 외롭지 않다. 이성을 잃을 만큼 무비판적으로 믿는 현상을 국어사전은 ‘광신’이라고 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철학교수였던 리처드 헤어는 어떤 이상을 다른 이상이나 이익보다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광신주의(fanaticism)라고 철학적으로 설명했다. 이상주의자는 자신의 이상 때문에 남들의 희생이 커지면 다른 길을 찾지만, 광신주의자는 아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를 위해선 사실과 결과를 따지지 않고, 법의 테두리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도 가볍게 외면한다.

‘이견(異見)을 용납하지 못하고, 모순에 가득 찬 자기만의 주의(主義)가 옳다고 선전한다.’ 캐나다의 심리치료학자 노만 도이지가 분석한 광신주의자의 대표적 증상이다. 노 대통령과 친노 집단에서 그 징후를 느끼고 마는 일은 슬프다. 이들은 사회 일각의 ‘진보적’ 이상주의와도 궤를 달리하는 모습이다.

열린우리당의 싱크탱크인 열린정책연구원의 지적대로 노 대통령은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적잖은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오만을 비판하고 민생회복을 다짐한 데 비해, 친노 집단은 “대통령이 껌이냐”며 되레 대반격을 시도한다. 대학 총장 수준의 국정운영 덕분에 나라가 이미 반석 위에 올라 있다고도 했다.

광신주의는 보통의 병(病)과 다른 철학적 병이란 지적이 있다. ‘철학적 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쓴 김영진 인하대 교수는 “앓는 사람이 직접적 고통을 당하는 육체적 정신적 병과 달리 철학적 병은 주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고 했다. 국민의 실질소득마저 줄어든 민생고가 이를 입증한다.

나치즘과 파시즘, 극단적 민족주의 같은 광신주의는 국가 사회에 ‘역사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조기숙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미국까지 가서 예고했듯, 노 대통령과 친노 그룹이 ‘정치 선진화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거룩한 말 속에 ‘광신의 독(毒)’이 묻어 있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위헌 시비가 있는 대연정(大聯政)에 대해 “위헌이니 뭐니 형식논리 갖고 말하지 말라”며 헌법을 경시하고, “민심을 추종하는 것만이 대통령의 할 일은 아니다”며 민심도 무시하는 대통령이다. 내년 초에 밝히겠다는 ‘미래 과제와 이를 해결할 사회적 의사결정 구조’에 관한 구상이 ‘노무현 유신(維新)’ 카드가 아닐지 두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권위주의적 광신주의에서 빠져나온 지 얼마 안 돼 또다시 광신주의의 망령을 불러내야 하나.

이제 광신주의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갈 방도는 두 가지다. 비판을 페스트처럼 혐오하는 그들을 향해 현실을 바로 보라고 소리 높이는 것과,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제 앞길 챙기는 방법이다.

다행히도 우리 국민의 경쟁력은 정부 경쟁력보다 높다. 그래도 친노 왕따시키기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왕따 역시 정신적 살해와 다름없는 철학적 병이므로.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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