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알면서도 속아주는 마음

  • 입력 2005년 11월 4일 03시 05분


코멘트
결혼을 하고 사는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상대에게 속았다”라는 말을 한다. 그 말에 농으로 “나도 한번 속아볼 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꾸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속았다는 말은 상대가 나를 속인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신을 속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하기 전에는 눈에 콩깍지가 끼어 상대가 무엇을 해도 다 예뻐 보이고 좋아 보인다. 담배 피우는 모습도 멋있어 보이고, 늦잠을 자고 눈곱이 끼어도 미인은 잠꾸러기려니 생각하며, 약간의 푼수기마저도 멋으로 느껴지던 마음이 결혼 후에 너무나 현실적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스스로를 속인 것이 아니면 누가 속였다는 말인가?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상대에 대한 나의 열의나 사랑이 미지근해짐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지 묻고, 오히려 죽도록 사랑하겠다고 말하던 자신의 사랑에 대해 반성할 일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혼의 사유로 성격 차이를 든다. 하지만 성격 차이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는 것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연애시절에도 그런 정도의 차이는 존재했지만 단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니 새삼 성격 차이를 이유로 헤어진다는 것은 자기 합리화나 다름없다.

처음 눈이 맞았을 때의 애틋함과 간절함으로 살 수만 있다면, 항상 서로가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과 내 사랑을 다 알리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살아 있다면, 우리는 이혼을 결코 쉽게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이혼이 만연한 세상, 그 세상 안에서 서로에게 속으면서 한 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속아 주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 어려움이 진정한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으면서 서로를 믿고 배려해 주는 어리석은 사랑이야말로 가정을 지켜 가는 또 다른 비결이 아닐까?

여전히 속으면서 살고 있는 당신은 행복하다!

김화석 신부·천주교 마산교구 미디어국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