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버려도 되지. 멜리사로부터.”
‘러브레터’는 한 남녀, 앤디와 멜리사가 주고받는 줄기찬 ‘편지질’에 대한 연극이다.
관객을 향해 앞을 보고 나란히 앉은 두 배우는 공연 내내 서로를 거의 쳐다보지도 않은 채 각자 편지만 읽는다. 이들이 주거니 받거니 읽는 편지는 사실상 두 사람의 대화다. 재치 있는 편지 속 문장들이 탁구공처럼 탄력 있게 앤디와 멜리사 사이를 오갈 때마다 객석에는 가벼운 웃음이 번진다.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범생이’ 앤디와 부모의 이혼과 재혼 등 순탄치 않은 성장과정을 거쳤지만 발랄함을 잃지 않은 부잣집 딸 멜리사. 코흘리개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깜찍한 ‘편지질’은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빛깔을 달리하며 평생 동안 이어진다. 한 사람은 이혼한 알코올 중독자로(멜리사), 또 한 사람은 세 아들과 아내를 둔 행복한 정치가(앤디)로 너무나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평생에 걸쳐 편지로 소소한 일상을 나누어 온 두 사람. 관객들은 편지 속에서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마음을 진작 읽어내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조금 늦게 깨닫는다.
‘사랑이란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세월을 쌓아가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2인극이다. 이 연극을 보고 나면, 갑자기 누군가에게 편지를 띄우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이 연극은 스타 영화배우 설경구가 9년 만에 연극무대로 돌아온 작품으로 공연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설경구가 출연하는 날은 보조석도 모자랄 만큼 관객이 넘쳐 ‘스타 파워’를 확실히 입증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무대에 선 탓인지 설경구는 대사가 아직 입에 완전히 붙지 않은 데다 “할머니가 주신”을 “엄마가 주신”으로 잘못 읽는 등 자잘한 실수가 많아 아쉬움을 남긴다.
설경구-김보영 팀을 포함해 이호재 최용민 이대영 김경식 최형인 지자혜 정경순 임유영 등 10명의 배우가 5팀을 이뤄 번갈아 공연한다. 12월 31일까지. 화∼금 7시 반 토 4시 7시 반, 일 공휴일 3시 6시 반 한양레퍼토리씨어터. 1만∼3만 원. 02-764-6460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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