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대학가 모자이크 시대]<下>‘半동거’ 절반의 자유

  • 입력 2005년 11월 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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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 하모(25·여) 씨는 얼마 전 대학생인 여동생과 함께 살기 위해 학교 근처에 3500만 원짜리 전세 원룸을 얻는 과정에서 부모에게서 큰 꾸지람을 들었다. 현재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와 계속 사귀기 위해선 방이 2개인 집을 얻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기 때문이다.

하 씨는 “동생과 남자 친구가 한방에 같이 있을 수는 없을 테고, 동생이 자주 자리를 비켜 주거나 내가 남자 친구 집을 자주 찾아야 하는 불편을 왜 이해하지 못하시는지 알 수 없다”고 불평했다.

그는 3년 전부터 다른 여학생과 함께 방이 2개인 자취 집을 얻어 살고 있었다. 각자 별도로 자취하는 남자 친구를 이따금 데려와 생활하는 이른바 ‘반동거(半同居)’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최근 대학가에는 2인 1실의 하숙방이나 하숙집을 찾기 힘들어졌다. 대부분 방이 하나 또는 2개인 자취 집으로 바뀌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다른 사람과는 단절된 나만의 독립된 공간을 원하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 2명과 반동거 경험이 있는 연세대 이모(24) 씨는 “사귀는 사람끼리 서로 집을 방문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며 “함께 밥도 먹고 인터넷으로 영화도 보며 서로 생활 습관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교제의 한 과정이 반동거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10년째 전세 원룸 20개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52) 씨는 “대학생들이 처음에는 혼자 산다고 계약을 하지만 대부분 이성 친구를 데려와 며칠씩 함께 지낸다”며 “처음에는 주의도 주고 말려도 봤지만 동네의 다른 원룸에 사는 대학생들도 대부분이 마찬가지여서 나만 별스러워지는 것 같아 지금은 모른 척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주변의 시선이나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동거를 하고자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경제성과 효율성이다.

직장에 다니는 언니와 함께 자취하며 이따금 남자 친구를 집으로 초대한다는 대학원생 김모(27) 씨는 “반동거는 데이트의 일상화이자 일상의 데이트화”라며 “따로 데이트할 시간을 내거나 비싼 돈을 들여 커피숍이나 DVD방을 찾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지방이 고향인 S대 재학생 정모(24·여) 씨는 “동거는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는 부담감과 부모님이 고향에서 올라오시면 한 명이 피해야 하는 곤란함이 있다”며 “반면 반동거는 각자 별도의 생활공간을 갖고 있어 외형적으로도 떳떳하고 서로 헤어지더라도 마무리가 깔끔한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성관계를 교제의 한 부분 정도로 가볍게 여긴다.

4년째 남자 친구와 반동거 중인 성균관대 박모(23·여) 씨는 “사실 성관계는 학교 앞 모텔이나 비디오방 등에서 훨씬 많이 이뤄진다”면서 “어차피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면 좀 더 안전하고 청결한 장소를 택하는 것이 실리적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미니홈피 일촌맺듯 부담없이 사생활 공유▼

반동거는 개인중심적인 ‘인스턴트 이성관’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이성 친구를 늘 곁에 두고 싶지만 남녀 관계에 구속되기 싫어하는 결과라는 것.

이화여대 함인희(咸仁姬·사회학) 교수는 “외국에도 ‘LTBA(Living Together But Apart)’라는 단어가 있다”며 “자기 공간을 지키면서 필요할 때만 만나 생활한다는 독신과 결혼의 중간 형태”라고 말했다.

이들은 단절된 독립 공간에서 사생활을 중시하고 기존의 윤리 도덕적 관념보다는 현실적인 경제적 관념을 높게 평가한다. 이들에게 개방적인 성(性)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인터넷 세대의 ‘방명록’ ‘일촌’ 문화가 반영된 것이 반동거라는 분석도 있다.

고려대 현택수(玄宅洙·사회학) 교수는 “반동거는 젊은이들의 놀이문화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가까운 친구(일촌)와 이성 친구와의 데이트 내용 등 은밀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관심 있는 이성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자주 드나들듯이 현실에서 필요에 따라 개인의 사적 공간에 드나드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디지털 코쿤족, 말짱, 반동거 등은 개인주의적 생활 속에서도 타인과 유기적인 조화나 교류를 갈망하는 신세대인 ‘모자이크족(族)’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 연구팀은 “포스트디지털세대(PDG·Post Digital Generation)는 모자이크의 각 조각이 고유의 색상과 문양을 갖고 있듯이 개인주의적이고 개성을 중시하지만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기 위해 서로 모이려는 응집성과 또 쉽게 다시 분리되는 성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동거(半同居):

남녀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한 집에서 살던 동거와는 달리 각각 다른 집에서 살면서 1주일에 며칠, 또는 한 달에 몇 주를 함께 지내는 형태. 반동거 기간에는 집 밖에서 따로 시간과 돈을 들여 데이트를 하지 않아도 되고 갈등이 생기거나 손님이 왔을 때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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