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도연]‘세계 93위 서울大’ 아직 갈길 멀다

  • 입력 2005년 11월 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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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가 세계 대학 랭킹을 발표하면서 서울대에 93등을 줬다. 한국 대학이 100등 안에 든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학의 경쟁력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 것일까. 우수한 학생과 교수들이 모여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내는 대학이 좋은 대학이겠지만 평가기관에 따라 세부 항목이나 항목별 가중치가 다르므로 같은 대학의 순위가 평가기관별로 큰 차이가 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더 타임스는 매년 상위 200등까지, 중국 상하이(上海)교통대는 500등까지의 대학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더 타임스 발표에서 세계 10등으로 평가받은 프랑스의 에콜폴리테크니크는 상하이교통대 순위에선 겨우 200등에서 300등 사이의 대학으로 평가됐다. 더 타임스는 올해 서울대에 93등의 성적표를 줬지만 상하이교통대는 서울대를 작년과 동일하게 100등에서 150등 사이로 평가했다. 이를 토대로 에콜폴리테크니크가 서울대보다 더 우수한 대학인지 아닌지를 따진다면 이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평가가 의미 있는 것은 중고교생 몇 천 명을 모아 놓고 한꺼번에 시험을 치르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출제 범위나 경향에 상관없이 10등 안에 드는 학생은 평소 다른 시험에서도 적어도 20∼30등은 한다. 보통 때 100등 하다가 갑자기 10등 안에 드는 일은 거의 없는데, 이는 분명한 실력 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어느 평가에서든 항상 10등 안에 끼는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옥스퍼드대 등은 확실히 좋은 대학이다.

상하이교통대가 선정한 500등까지의 대학을 국적별로 헤아려 보면 미국이 그 3분의 1에 해당하는 169개로 압도적이다. 독일과 영국이 각각 37개, 일본이 32개다. 200여 개의 대학과 160여 개의 전문대가 있는 우리나라는 500대 대학에 단지 7개가 포함됐다. 중국은 현재 7개의 대학(대만과 홍콩을 포함하면 모두 17개)이 여기에 속해 있는데, 가장 좋다는 베이징(北京)대를 중국인 스스로는 아직 200∼300등 수준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더 타임스가 베이징대를 세계 12등으로 일본의 도쿄(東京)대보다도 더 높게 평가한 것과는 대조적인데, 혹 중국인의 겸손한 평가가 역설적으로 자신감과 여유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년 발표되는 대학 순위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21세기 지식기반 사회로 접어들면서 대학 경쟁력이 곧 국력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의 대학의 부진을 생각하면 서울대의 100위권 진입은 반가워할 일이지만 세계 10등 수준의 경제 규모에 비춰 보면 한국 대학은 아직 갈 길이 너무도 멀다. 지금과 같은 대학 경쟁력으로는 한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을지도 불안하다. 5년 이내에 10개의 대학이 500등 안에, 그리고 2, 3개 대학은 50등 안에 들 수 있도록 국가의 대폭적인 지원과 대학의 내부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더 타임스가 꼽은 세계 100대 대학 중에 서울대처럼 학생 대 교수의 비율이 높고, 또 기숙사 시설이 많이 모자라 학생들이 통학에 평균 두어 시간씩을 빼앗기는 대학은 없다. 아울러 총장, 학장을 교수들이 직선으로 뽑고 학과장을 2년씩 돌아가면서 맡는 대학도 서울대가 유일한 듯싶다.

무엇보다 우선해 허울뿐인 대학의 자율권을 대학에 돌려줘야 한다. 대학입학시험의 논술시험조차 자율적으로 치르지 못해서야 헌법(31조)이 보장한 대학의 자율성을 우리나라 대학들이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김도연 서울대 공대 학장·재료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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