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 베이비부머, 그들이 떠난다]<下>美-日에선

  • 입력 2005년 11월 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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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부머, 그들을 사랑하라(Love Those Boomers).”

최근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내년에 처음으로 환갑을 맞는 ‘베이비 붐 세대’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기사를 실었다.

베이비 붐 세대의 무더기 퇴장은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선진국에서도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는 노동력 부족과 연금 부담 확대 같은 걱정거리로 다가왔다. 베이비 부머들이 한국보다 한발 앞서 은퇴하는 미국과 일본의 경험은 한국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 시대를 바꾼 미일의 베이비 부머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59세 동갑내기다. 1946년 태어난 미국 베이비 붐 세대의 ‘맏형’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6년부터 미국의 산부인과 병원들은 산모와 신생아를 수용할 병상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이때부터 1964년까지 태어난 베이비 부머들의 현재 나이는 41∼59세. 약 7800만 명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26.9%를 차지한다.

이 세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교실 부족 현상이 뒤따랐고 결혼할 때쯤인 1980년대에 주택시장은 급속히 팽창했다. 1980년대 초 1,000을 맴돌던 다우존스지수가 20여 년간 10,000 선까지 치솟은 것도 이들 세대가 여유자금을 주식시장에 퍼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미국 증권가의 일반적 분석이다.

1947∼1949년 3년 동안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 부머는 ‘덩어리’란 뜻의 ‘단카이(團塊) 세대’로 불린다. 806만 명이나 되는 이 세대가 유별나게 자기들끼리 뭉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이 1960년대 후반 대학에 입학하자 일본 대학에서는 학생운동이 격화됐다. 하지만 경제발전과 함께 운동권의 주축은 사회에서 격리됐고 나머지는 1970년대 고도성장기에 사회에 진출해 일본 경제성장의 주역을 담당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철희(朴喆熙) 교수는 “일본의 단카이 세대는 기성세대의 권위를 부정하는 ‘학생운동’의 주도세력으로 일본을 변화시킨 주체”라고 소개했다.

○ 베이비 부머에 미래 경제 달렸다

미국의 경제전문 조사회사인 ‘콘퍼런스 보드’에 따르면 7년 후 미국의 55∼64세 근로자는 2500만 명으로 전체 노동인구의 51%를 차지하게 된다.

특히 공무원과 전력회사 근로자는 절반 이상이 5년 내에 은퇴 연령(64세)에 도달하게 돼 이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때 적지 않은 사회적 충격이 있을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본에서도 단카이 세대가 모두 퇴직하는 2009년에는 총 131만 명의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날 전망이다.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면 사회보장연금과 의료비 지출이 증가해 국가 재정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일본인구문제연구소는 일본의 사회보장비 지출이 2005년 91조 엔(국민소득 대비 24%)에서 2025년 152조 엔(국민소득 대비 29%)으로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베이비 부머들의 ‘무더기 퇴장’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미국과 일본 정부는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은 55세였던 정년을 1998년 60세로 늘린 데 이어 내년부터 2013년까지 다시 65세로 연장할 계획이다. 재정 악화를 피하기 위해 연금지급 연령도 60세에서 65세로 높여 가고 있다.

미국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할 수 없도록 근로자의 ‘연령차별 폐지’를 법제화했다. 기업들은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를 도입해 고령 근로자를 채용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문형표(文亨杓)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 선진국 경제는 은퇴한 베이비 부머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베이비 부머 은퇴로 소비패턴 변화

노후 경제력이 우려되는 한국의 베이비 부머들과는 달리 선진국의 베이비 부머들은 큰 ‘소비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의 베이비 부머들은 현재 미국 연간 전체 소비의 절반인 2조 달러(약 2000조 원)를 쓴다. 일본의 단카이 세대 역시 앞으로 챙길 퇴직금을 포함해 179조 엔(약 1611조 원)에 이르는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최대 대중서적 출판업체인 펭귄은 시력이 나빠진 베이비 부머를 위해 글자 크기를 키운 문고판 서적을 내놓아 대박을 터뜨렸다.

명품 오토바이를 생산하는 할리 데이비슨사는 50대 베이비 부머를 새로운 주 고객층으로 보고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의 성공도 50대에 들어선 베이비 부머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게 미국 경제계의 분석이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李地平) 연구위원은 “선진국의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는 향후 10년간 세계적으로 소비 패턴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며 “한국은 선진국 베이비 붐 세대의 취향과 움직임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베이비 부머 붙잡아라” 日기업 고용틀 바꾼다▼

《일본에서는 현재 56∼58세인 ‘단카이 세대’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에 걸쳐 60세 정년을 맞는다. 단카이 세대는 ‘회사 인간’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삶의 최대 가치를 일과 조직에 두고 살아온 세대다. 일본 사회는 이들의 무더기 퇴장으로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은 ‘임금피크제’ 등 고령자에 대한 고용 확대 제도를 앞 다퉈 도입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나이를 정점으로 퇴직할 때까지 근로자의 임금을 단계적으로 삭감하거나 고정하는 제도. 일본에서는 정년 후 재계약해 임금을 이전보다 덜 받는 방식으로 계속 일하는 사례가 많다.

일본 최대 자동차회사인 도요타자동차는 숙련 근로자의 퇴직에 따른 기술력 저하를 막기 위해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까지 연장하고 회사에 필요한 인력은 65세 이후에도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04년 4월부터 고용연장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산요전기의 정년은 60세. 직원들은 55세가 됐을 때 60세에 퇴직할 것인지, 아니면 최고 65세까지 연장 근무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60세 이후에도 근무를 원하면 55세 때의 임금을 정점으로 임금이 점차 줄어든다.

다른 기업들도 일본이 자랑해 온 숙련 기술 인력의 퇴장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2001년 1월부터 베이비 붐 세대 숙련 기능공을 강사로 하는 ‘기능학원’을 회사 내에 설립해 입사한 지 9∼13년 된 중견 기능공을 교육하고 있다.

후지엔지니어링은 고령자와 청년층을 섞어 6명 단위로 팀을 구성해 제조 현장에서 수십 년간 쌓인 ‘암묵적 지식’을 청년 근로자들이 흡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신용보증기금이 2003년 7월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후 금융회사와 공사(公社)를 중심으로 20여 개의 기업이 이 제도를 도입했다.

정부도 베이비 부머의 퇴장과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 이 제도의 도입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노동부는 내년부터 노사 합의를 통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임금이 줄어든 근로자에게 깎인 임금의 최고 50%까지 직접 보전해 줄 계획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김동배(金東培) 연구위원은 “한국도 베이비 부머의 퇴장으로 지금도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심각한 인력난이 올 수 있다”면서 “베이비 붐 세대의 나이가 많아져도 계속 고용하기 위한 방안을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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