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남진우]한국문학 지상목표 된 듯한 노벨상

  • 입력 2005년 11월 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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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우리나라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을 놓고 유난히 많은 말이 오고간 것 같다. 얼마나 정확한 소식이었는지 모르겠으나 한 시인이 유력하다는 외국 언론의 보도가 전해지고 난 후 우리나라 기자들이 수상자 발표 즈음에 시인의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다들 기대가 상당했나 보다. 얼마 전 폐막된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관한 보도에서도 일본이나 헝가리의 예를 들어 가며 이 도서전에서 주빈국가로 행사를 치른 나라에 몇 년 후 노벨 문학상이 돌아간 경우가 많았다는, 다분히 희망이 담긴 관측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런 보도를 접하노라면 노벨 문학상 수상이 무슨 국가적 과제의 하나라도 된 듯한 인상마저 받게 된다. 그러면서 일본 작가로서는 두 번째로 오에 겐자부로가 이 상을 받았을 때 당시 정황을 잘 아는 사람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에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가시권에 들어온 후 일본 기자들은 해마다 노벨 문학상 발표 예정일에 그의 집 앞에 모여 수상자 발표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수년간 반복된 이 모임은 거의 스웨덴 한림원을 향한 일본의 시위에 가까웠다고 한다. 작가는 작가대로 1년 내내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주요 문학 행사에 얼굴을 내밀며 부지런히 인맥을 쌓고 자기 홍보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던 당시엔 설마 그 정도까지 했을까, 해야 할까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야기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어느덧 그런 풍경의 일부가 이웃나라가 아닌 바로 이 땅, 우리 문화계 주변에서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노벨 문학상 역대 수상자의 면면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존재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 보는 것은 새삼스럽긴 하지만 우리의 균형 감각에 도움이 되는 면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1901년 톨스토이와 에밀 졸라를 제치고 제1회 수상자로 결정된 프랑스의 시인 쉴리 프뤼돔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933년 한림원이 러시아 작가로 굳이 고리키를 제외하고 이반 부닌을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또 어떤가. 이런 경우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명하는 것이 힘들 정도다. 릴케, 발레리, 파운드 같은 위대한 시인이 빠지고 보르헤스, 브레히트, 조이스, 프루스트 같은 대가를 소외시킨 대신 펄벅 같은 대중작가나 처칠 같은 정치가를 포함시킨 것 역시 현명한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 세계문학의 흐름에 대해 어지간하게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루돌프 오이켄, 카를 슈피텔러, 살바토레 콰시모도, 체스와프 미워시 같은 낯선 이름의 수상자들 앞에선 고개를 젓기 십상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노벨 문학상의 권위에 대한 해묵은 논란을 넘어 한국 문학이 이 상으로 상징되는 ‘타자의 인정’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압축 근대’를 겪었듯이 우리 문학 역시 빠른 성장의 도정을 거쳐 왔다. 신문학 100년의 역사를 헤아리는 지금 우리 문학은 유소년기와 성년기를 지나 장년기의 피로를 체감하는 지점에까지 와 있다. 이런 때 노벨 문학상 같은 전통을 자랑하는 문학상이 수여된다면 그것은 단지 해당 작가에게 주어진 영예를 넘어 우리 문학 전체에 나름대로 큰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벨 문학상에 대한 기대는 적절한 수준에서 갈무리되고 수준 높은 번역과 해외 출판을 통해 차분하게 뒷받침되어야지 이것이 마치 우리 문학의 지상목표라도 되는 양 품위 없이 노출될 때 씁쓸한 뒷맛을 안겨 줄 뿐이다.

우리 문학이 진정 희망적인 것은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한두 작가나 시인 말고도 그만한 역량의 소유자가 그 세대에만도 한 다스는 된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올 상은 결국 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조금 느긋하게 인내하며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할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아주 오랜 기간 노벨 문학상 후보였지만 끝내 수상하지 못하고 타계한 영국의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만년에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노벨 문학상을 기다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아니, 내가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이오.”

남진우 명지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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