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예씨, 서양회화 10대 거장 다룬 단편소설집 펴내

  • 입력 2005년 11월 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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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을 찾은 권지예 씨. 그는 “어떤 그림이든지 내 식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래서 상상력을 촉발하는 그림을 좋아한다. 발튀스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서사가 숨겨져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원대연  기자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을 찾은 권지예 씨. 그는 “어떤 그림이든지 내 식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래서 상상력을 촉발하는 그림을 좋아한다. 발튀스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서사가 숨겨져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원대연 기자
올해 동인문학상을 받은 작가 권지예(45) 씨가 서양 회화 거장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랑하거나, 미치거나’를 시공사에서 펴냈다. 1853년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부터 2001년 숨진 발튀스까지 근현대 미술의 거장 10명이 주연이나 조연, 단역이 아니면 카메오로 나오는 단편 소설 10편을 모았다. 에로틱하면서 유머러스한 것부터, 진지하면서 비감한 것까지 작품들 하나하나의 컬러가 독특해서 마치 책으로 만든 여러 색깔의 캔버스를 보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이 드는 또 다른 이유는 이야기와 맞물리는 거장들의 회화가 책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허구적 픽션과 전기적 논픽션의 사이 어디쯤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림과 맞물리는 이런 소설집은 국내에선 처음 나오는 것인데 권 씨는 애초부터 이런 책을 펴낼 수 있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힐 만했다. 그가 1997년 데뷔하면서 내놓은 단편 ‘상자 속의 푸른 칼’에는 푸른빛의 물감을 으깨듯이 쓰는 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의 이야기가 나온다.

권 씨는 이상문학상을 받은 단편 ‘뱀장어 스튜’에 대해서는 “피카소 그림을 보다가 떠오른 생각을 옮겼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1991년 남편인 미술평론가 김종근 씨와 함께 프랑스로 건너간 뒤 1999년까지 머물면서 곳곳의 미술관을 다녔는데 “글감이 잘 안 잡히면 버릇처럼 화집들을 들춰 본다”고 말했다.

이번 단편집에서 파블로 피카소를 다룬 소설인 ‘러버들의 수다’는 피카소와 결혼을 했거나, 아이를 낳았거나, 열애를 나눴던 여인 일곱 명이 누가 정말 피카소의 진정한 사랑을 받았느냐를 놓고 노골적으로 다투는 이야기다.

“책에 등장하는 10명의 미술가 가운데 가장 끌리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권 씨는 “피카소”라고 말했다. “피카소는 새 여자를 얻었을 때마다 기념비를 세운 듯이 화풍을 바꾸었어요. 사랑도 예술도 다 거머쥐었던 행복한 예술가였지요. 거기에 사후의 불멸까지… 정말 부러운 데가 많아요.”

하지만 책에는 살아생전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다 불행하게 숨져간 고흐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같은 이들도 나온다. 권 씨는 이렇게 말했다.

“서른일곱 살 되던 해에 파리 근처의 오베르 쉬르 오아즈라는 곳에 있는 고흐의 무덤을 찾아갔어요. 비명을 보니, 바로 제 나이에 고흐가 숨졌더군요. 갑자기 안도랄까, 서글픔 같은 게 생기더군요. 아, 나는 예술가의 요절하고는 거리가 멀구나, 이 나이까지 살았으니. 뭐, 그런 생각이 든 거지요. 그렇게 될 순 없으니까 저는 가늘고 길게 살고 싶어요.(웃음)”

책에는 다리 발육이 정지된 툴루즈 로트레크, 소아마비에 걸린 데다 열차에 부딪혀 중상을 입었던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도 나온다. 장애와 결핍이 예술적 에너지로 승화되는 경우에 대해 권 씨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이야기들은 너무나 감동적이고 예술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평범하게 한평생을 살다간 에드워드 호퍼를 주목하고 싶어요. 외형적으론 그럴지 몰라도 호퍼의 내면에는 완벽주의, 끓는 열정 같은 게 있었겠지요. 스스로 소진하기보다 끊임없이 자기를 관리하면서 더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내려는 것, 그게 예술가들의 보편적인 욕망이지요.”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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