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대학가 ‘모자이크 시대’]<上>디지털 코쿤族

  • 입력 2005년 11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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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코쿤족을 수용하려는 대학가의 노력은 생활공간에까지 변화를 몰고 왔다. 다른 사람의 뒤통수를 쳐다봐야 하는 일자형 테이블 대신 개인 중심의 공간을 마련한 고려대 정보검색실(위)과 창밖이나 벽을 보고 ‘나 홀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만든 숙명여대 앞의 한 카페. 김재영 기자
디지털 코쿤족을 수용하려는 대학가의 노력은 생활공간에까지 변화를 몰고 왔다. 다른 사람의 뒤통수를 쳐다봐야 하는 일자형 테이블 대신 개인 중심의 공간을 마련한 고려대 정보검색실(위)과 창밖이나 벽을 보고 ‘나 홀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만든 숙명여대 앞의 한 카페. 김재영 기자
《‘코쿤족, 말짱족, 밥터디족, 아베크족….’ 최근 대학가에 한두 가지 신조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신종족(新種族)’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을 주된 생활공간으로 활용하며 개인을 중시하고 개성 표현에 자유롭다. 대학가는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공간과 강좌를 잇따라 만들고 있다. 파편화돼 있으면서도 나름대로 문화를 형성하는 이들은 ‘모자이크족(族)’ 또는 ‘포스트디지털세대(PDG)’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의 생활상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대학생 박모(24) 씨는 최근 학자금 대출과 함께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학교 앞에 3500만 원짜리 원룸을 전세로 얻었다.

박 씨는 “나만의 공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며 “집에서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어 PC방이나 학교 전산실 등을 돌아다닐 때 보다 오히려 잡비도 적게 든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기와 개인통신망이 일상화되면서 자신만의 공간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른바 ‘디지털 코쿤족(族)’이 대학가에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간섭과 접촉을 기피하는 대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구하고 휴대전화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한다.

과거처럼 하숙집이나 기숙사에서 공동으로 빨래를 하거나 식사를 하기보다는 개인용 세탁기나 1인용 식당에서 혼자 생활을 즐긴다.

대학가에는 이들의 새로운 문화코드를 따라잡기 위해 공간을 뜯어고치는 등 개조가 한창이다.

지난해 숙명여대 앞에 문을 연 음식점 ‘무스비원’은 최근 창가 쪽에 창밖을 볼 수 있도록 의자가 놓인 이른바 ‘바(bar)’형 긴 판자 테이블을 들여놨다.

혼자 와 식사를 하고 가는 ‘나 홀로’ 손님이 전체의 40%에 달하기 때문에 큰 테이블은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손님들은 제각각 잡지를 보거나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듣고 또 일부는 휴대전화를 사용하며 식사를 했다.

고려대 학생자율 생활관의 휴게실에서도 기존의 대형 테이블은 볼 수 없다. 폭이 좁고 곡선형인 1인용 테이블이 꽉 차 있다.

이 학교 박해상(24·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씨는 “어차피 혼자 과제를 할 때가 많은데 테이블이 불필요하게 커서 모르는 사람들이 앞에 와 앉는 게 싫다”며 새 테이블을 반겼다.

최근 멀티미디어실과 정보검색실을 새로 만든 서울대와 고려대는 모니터가 달린 테이블을 ‘1인용’이란 느낌이 강하게 설계했다. 한쪽 방향만을 바라보는 예전의 ‘강의실형’ 배치 대신 각각의 출입이 편리하도록 방사형으로 바꿨다.

서울대 관계자는 “학생들이 남에게 간섭받기 싫어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찾는다는 점에 착안해 독립적인 분위기와 자유분방함이 느껴지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건국대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신축 중인 기숙사를 1인실과 2인실로만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이들이 소외되고 고립된 생활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가에는 ‘밥터디족(族)’이 등장했다. 과거 공부를 하기 위해 ‘스터디 클럽’을 결성하듯이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으려고 모임을 결성한다는 것.

서울대 대학원생 정병욱(27) 씨는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점심시간과 장소, 메뉴 등을 정한다”며 “구속이나 의무적인 모임은 싫어하지만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일에는 결국 ‘사람’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 ‘코쿤족’ 전문가 진단

사회학자들은 이른바 ‘디지털 코쿤족’에 대해 핵가족화로 형제자매가 없고 부모는 맞벌이 생활로 혼자 삶을 꾸려 나가는 환경에 익숙한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한양대 박기수(39·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요즘 대학생들은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공동체보다는 접속 탈퇴 잠수 등이 언제든지 가능한 가상세계를 선호한다”며 “디지털 코쿤족의 확산은 개인화되고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대학생들의 심리를 잘 보여 주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디지털미래연구실 이호영(李鎬英·37·여) 책임연구원은 “한국의 디지털문화는 점차 개인화되는 미디어와 콘텐츠의 집단적 향유를 추구하는 집단성이 공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간을 달리하지만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문화를 만드는 ‘따로 또 같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다. 평상시에는 개별적인 하나의 점으로 존재하다가 특정한 순간에 자발적인 선으로 연결되는 것을 중요시하는 ‘네트워크화된 개인’ 중심의 포스트 디지털 세대라는 것.

온게임넷 게임해설가 엄재경(37) 씨도 “일본 미국에서 콘솔게임기(전문 게임기기)가 인기지만 한국에서만 유독 온라인 네트워크 게임이 인기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신세대의 디지털문화는 개인주의 속에 집단주의, 공동체 의식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디지털 코쿤족이란(Digital Cocoon族):

미국 마케팅 전문가 페이스 팝콘이 ‘불확실한 사회에서 단절되어 보호받고 싶은 욕망을 해소하는 공간’이란 의미로 코쿤(cocoon·누에고치)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코쿤족’이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만의 생활을 즐기는 칩거증후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디지털 코쿤족’은 인터넷 등을 통해 외부와 끊임없이 의사소통하면서도 칩거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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