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형국]헌재 흠잡는 與 ‘행정수도 의견서’

  • 입력 2005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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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가르기 식의 ‘코드정치’ 탓인지 최근 들어 부쩍 갈등 현안에 대한 찬반의 물리적 세(勢) 대결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달 하순에도 서울 시내 한쪽에서는 신행정수도 건설 지지 대회가 열렸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대 가두 행진이 있었다.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이 헌법소원 제기 3개월여 만인 작년 10월 21일에 위헌 판결이 내려진 전례를 고려하면, 올해 6월 15일에 소원이 제기된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의 판결이 임박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일동도 의견서를 최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의견서는 “법리적 논점보다는 정책에 대한 반대를 앞세워 위헌 확인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은 헌법에 근거한 민주적 합의 절차에 따른 결정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헌법상 대의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부정하는 행위이며, 국민으로부터 입법 권한을 부여받은 국회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친 헌법적 노력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다.

이번 헌법소원 제기 이후 법안의 이해 당사자인 건설교통부, 과천시, 서울시 등의 보충의견서 제출은 정당하다. 하지만 여당의 경우는 엉뚱한 데가 있다. 옛 활터에는 멀리 있는 과녁 옆에서 화살의 적중 여부를 외치는 심판이 있었다던데, 법 제정 주체인 여당의 의견서 제출은 아직 화살이 과녁에 도달하지 않았는데도 쏜 사람이 심판에게 “맞았다”고 하라는 압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드는 삼권분립은 일 짓기 노릇과 일의 적법성을 따지는 노릇을 따로 두는 장치다. 때문에 일 짓기 바탕을 만드는 국회의 입법 권한도 사법부의 판단을 피할 수 없다. 국회가 대변하는 대의민주주의는 사법의 독립, 공직의 중립, 언론의 자유 같은 제도민주주의와 짝이 되어 서로 견제해야만 민주주의가 올바로 선다는 말이다.

여당이 의견서 제출을 서두른 것을 보면 필시 ‘제 발 저린 데’가 있는 모양이다. 새 법은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이란 긴 수식어가 들어 있다. 위헌 판결 사안의 후속대책이라고 버젓이 갖다 붙임은 당초 정책이 정당했기 때문에 더욱 다듬었다는 우격다짐으로 읽힌다. 의도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위헌 판결한 헌재를 흠잡는 말이다.

의견서는 또한 국회의 ‘후속대책위원회’에서 충분한 논의와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는 등 민주적 합의 절차에 따라 새 입법을 추진했다고 주장한다. 의견서의 말대로 국회에서는 여야가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작년에 헌법소원을 주도했던 반대 입장 측과 언제 의견 교환을 시도한 적이 있는가. 참여정부의 ‘참여’가 그 지경임을 확인하자, ‘행정도시법’이 국익에 반한다는 소신을 가진 일단의 청구인이 헌재에 사안을 다시 들고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균형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이 정부에서 행정수도 건설을 정점으로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말한 많은 항목에는 ‘행정권한 지방 이양’도 들어 있다. 하지만 그 실상은 어떤가. 교통관할은 경찰 몫인 까닭에 서울시가 세종로 사거리 동서 횡단도보 개설 허가를 얻는 데는 2년 넘게 걸렸다. 경찰의 상급기관인 행정자치부가 쉬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이 세월이면 청계천 복원공사도 마칠 시간이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말한 권한의 지방 이양도 그렇게 우물쭈물이다. 균형개발은 낙후지역에다 새 활력을 심는 것이 정석인데 고작 서울에 있던 것을 지방에 옮겨 균형을 이루겠다는 접근은 하향 평준화도 마다하지 않는 저돌(저突)이다. 각종 저돌이 난무하는 난국의 탈출구가 모두 궁금할 뿐이다.

김형국 서울대 교수 환경계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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