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립 60돌 ‘해방둥이’ 한진그룹

  • 입력 2005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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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대를 여러 개 놓는다고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것은 아니다. 실력 있는 낚시꾼은 단 하나의 낚싯대로 승부를 건다.”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낚싯대 경영론’이다. 그는 ‘한 우물만 파자’는 사업철학을 가졌던 경영인. 그룹 규모가 커지면서 사업다각화 제의가 많았지만 그때마다 고개를 흔들었다. ‘해방둥이’로 태어나 수송업에 전념해 온 한진이 1일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한진그룹의 모태가 된 ㈜한진은 1945년 11월 1일 인천 중구 해안동에 ‘한진상사’라는 간판을 내걸고 수송업에 발을 디뎠다. 밑천은 트럭 한 대뿐이었다. 조중훈 조중건(현 대한항공 고문) 형제가 내건 이름은 한진.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라는 뜻이었다.》

○ 베트남에서 터뜨린 대박

한진이 성장한 결정적 계기는 ‘베트남 특수(特需)’였다.

㈜한진은 1966년 베트남에 파병한 미국과 하역 및 수송계약을 맺었다. 1950년대부터 국내 주둔 미군 기지에서 물자 수송을 담당하며 남다른 유대관계를 맺어 온 덕이었다.

조중건 고문은 자서전 ‘창공에 꿈을 싣고’에서 “당시 우리 ‘조(Cho) 브러더스(형제)’ 하면 모르는 미군 장교가 없었다”고 했다. 그만큼 발리 넓었고 신뢰도 두터웠다.

한진이 1966년부터 5년간 베트남에서 벌어들인 돈은 1억5000만 달러. 한국은행이 보유한 외화가 5000만 달러이던 시절이었다.

○ 세계를 나는 비행기로

“대한민국 국적기를 타고 외국에 나가 보는 게 소원입니다.”

한진은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을 받고 항공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중역들은 부실투성이였던 국영 ‘대한항공공사’ 인수에 반발해 “우리가 베트남에서 고생해 모은 돈을 ‘밑 빠진 독’에다 붓는 것”이라고 반대했으나 조중훈 회장은 육해공 종합수송 회사를 꿈꾸고 있었다.

대한항공은 36년이 지난 현재 보유항공기 115대, 32개국 91개 도시 취항, 매출액이 7조 원이 넘는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했다. 올해에는 화물수송 세계 1위라는 경사까지 맞았다.

○ 한진의 시련과 미래

1999년 10월. 국세청은 한진그룹의 탈루소득 1조895억 원을 찾아내 5416억 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성장을 거듭하던 한진은 1990년대 괌 여객기 추락, 상하이(上海) 화물기 추락 등 대한항공의 잇따른 사고에다 탈세사건까지 겹치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뼈를 깎는 자구(自救) 노력과 안전에 대한 투자로 신인도를 회복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진그룹은 ㈜한진, 한진해운, 대한항공으로 국내의 ‘육해공’을 장악했으나 ‘장밋빛 미래’만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니다.

물류기업들의 치열한 경쟁과 세계적인 대형 항공사의 잇따른 몰락은 위기의식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진그룹의 종합물류팀장 출신인 ㈜한진 택배본부장 김기선(57) 상무는 “과거 60년의 변화보다 향후 10년에 올 변화가 더 중요하다”며 “트럭 몇 대, 항공기 몇 대 등 하드웨어의 양적인 성장보다 인재 육성과 해외 네트워크 확보로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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