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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최초의 페미니즘 화가…‘화가 나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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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최초의 페미니즘 화가…‘화가 나혜석’

입력 2005-09-10 03:00수정 2009-10-0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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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혜석/윤범모 지음/360쪽·1만5000원·현암사

인간 나혜석보다 ‘화가 나혜석’에 초점을 맞춘 평전이다. 인간 나혜석은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보다 죽은 애인의 무덤으로 신혼여행을 갔다든지, 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에 남편과 함께 세계일주를 떠났다든지, 여기에 불륜, 도발적인 ‘이혼고백서’ 발표, 정조 유린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근대 여성으로서의 파격적인 삶으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정작 그의 예술세계는 소홀히 취급된 것이 사실. 이 책은 한국근대미술사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경원대 미대 교수인 저자가 나혜석의 사생활이 아니라 미술적 성취에 특히 주목한 본격적인 ‘나혜석’ 연구서다.

나혜석(1896∼1948)은 한국 유화를 정착시킨 최초의 전업 유화가였다. 미술작품을 본격적으로 제작해 전시·판매 등을 통해 전업화가의 기초를 닦은 선구적 예술가이기도 했다. 많은 선배 남성 화가들이 시대를 한탄하며 붓을 꺾었을 때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그림을 그렸다. 수차례 개인전과 ‘조선미전’ 전람회 등을 통해 유화라는 새로운 표현 매체의 위상을 확립했고 작품을 판매하여 직업으로서의 화가 생활을 영위하였다.

근대여성문학사의 서막을 장식한 문학가이기도 했던 그는 가사노동에 열심인 여성을 다룬 신문 연재 그림, 일하는 여성을 등장시킨 ‘조선미전’ 출품작 등을 통해 미술작품에서 여성의 정체성을 드러낸 최초의 페미니즘 화가라는 게 저자의 평가다. 또 인물화보다 풍경화를 선호했으며, 작품에서 풍경이나 정태적 인물상이 아닌 일하는 사람을 다루는 등 현실을 강조했다. 작품의 특징을 꼽자면 견고한 구성과 자신감 넘치는 묘사, 확실한 공간감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

이혼과 불륜 행각으로 ‘나쁜 여자’로 각인된 어머니 때문에 받았던 상처를 담담하게 증언하는 나혜석의 장녀 김나열 여사와의 대담도 실려 있다. 미국에 유학해 이민자로 살고 있는 김 여사는 “나혜석은 한 사람의 어머니 이전에 예술가로 꿋꿋하게 살았다”고 평가한다.

책에는 객관적인 연구자의 시선과 함께 화가 나혜석에 대한 저자의 각별한 애정이 배어 있다. 선구적인 화가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특히 고인의 말년을 평가하는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세간에서는 병든 몸으로 이리저리 떠돌며 살다 종국에는 행려병자로서 사망한 나혜석의 말년 행적을 불행한 말로라고 폄훼하지만 그렇게 비참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경제적 어려움과 세속적 단절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살았을지언정 은둔하던 시절의 나혜석의 행적을 살펴보면, 여러 사건을 겪은 뒤에 스스로 사회와 거리를 두고 음유시인처럼 혹은 구도승처럼 정신적 포만감을 향유하며 비승비속의 상태로 무소유를 실천하는 ‘무애행’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허문명 기자 ang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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