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0년 폴란드 자유노조 ‘연대’ 출범

  • 입력 2005년 8월 31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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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 27일에 폴란드 전 대통령이자 자유노조 ‘연대(솔리다르노시치)’ 창립자였던 레흐 바웬사가 그단스크의 옛 레닌 조선소 자리에 모습을 나타냈다. 10만여 명이 그를 둘러싸고 환호성을 올렸다.

25년 전 그는 그 자리에 파업 주동자로 서서 노동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사반세기가 흐른 오늘, 그는 승리를 이끌어낸 역사의 주역으로 ‘연대’ 설립 25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를 축하하기 위해 같은 자리에 선 것이다.

1980년 8월 31일, 폴란드 부총리인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장군이 그단스크 조선소의 바웬사 노조위원장을 찾아왔다. 그는 ‘조선소 파업에 따르는 사회 불안정을 타개하기 위한’ 합의서 초안을 바웬사에게 제시했다. 두 사람이 서명한 합의서에는 △정부는 자주적인 노조와 파업권을 인정한다 △노조는 소비에트 블록의 동맹과 정부의 지도력을 인정한다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후 8월 31일은 ‘연대’ 노조의 출범일로 기록됐다.

이날을 시작으로 폴란드는 동유럽 지역 격변의 중심에 서게 됐다. 12월에 폴란드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바웬사를 비롯한 ‘연대’ 지도자들을 구금하며 약속을 깼다.

1988년 노동자들의 소요가 다시금 폴란드를 휩쓸자 당시 총리로 재임 중이던 야루젤스키는 자유노조와의 타협을 시작했다. 이듬해 자유노조는 폴란드 의회 선거에 참가해 승리한 뒤 공산당과 연립정부를 수립했다. 자유노조 출신으로 전후 최초의 동유럽 지역 비공산계 총리인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가 취임했다. 바웬사는 1990년 초대 직선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 뒤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연대’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바웬사는 올해 4월 TV에 출연해 “우리는 더는 훌륭한 팀이 아니며 갈라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8월 자유노조 출범 25주년 기념식을 축하한 뒤 탈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전문가들은 제3세계의 정치적 노동운동이 민주화라는 목표에 도달한 뒤에는 정치적 무능 때문에 자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대’ 역시 권력을 장악한 후 부패와 권력다툼 끝에 좌파에 다시 권력을 넘기는 등 혼선을 거듭했다. 올 10월로 예정된 대선에서는 ‘연대’ 출신의 레흐 카친스키가 승리해 구 공산계열의 현 정부로부터 정권을 다시 넘겨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최근 바웬사와 명예훼손 관련 소송 끝에 패한 그는 ‘강한 국가’ 등 보수적 가치를 주장하며 ‘연대’가 가꾸어 온 원칙들과 충돌을 빚고 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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