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6자회담을 왈츠처럼

  • 입력 2005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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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는 춤춘다더니 정말 그렇군.”

북한 핵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제4차 6자회담이 북한과 미국의 의견차를 끝내 좁히지 못한 채 7일 휴회되자 편집국에선 가벼운 탄식이 나왔다.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13일간 계속됐던 회담의 타결이 임박한 듯이 보였다가 결론을 못 내린 데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조금도 나아지는 것은 없다”는 1814년 9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럽의 90개 왕국과 53개 공국(公國)의 대표가 모여 유럽의 재편 문제를 논의하는 대규모 국제회의를 열었을 때 오스트리아의 장군 폰 리뉴가 남긴 말이다.

당시 강대국들의 대립으로 회의가 진전되지 않고 약소국들은 논의의 뒷전에 밀리자 회의를 주최한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는 경쾌한 왈츠곡이 흐르는 무도회를 자주 열어 각국 대표들을 달랬다.

빈 회의와는 달리 베이징 6자회담장 주변에선 무도회는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회담이 난항을 겪을 때마다 북-미 간에도 사교댄스에서 중시되는 파트너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6자회담의 한국 측 수석대표인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휴회에 앞서 “탱고를 추는 데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공감이 간다. 그는 관능적인 몸짓과 표정이 강조되는 탱고를 예로 들었지만 상호 불신이 심한 북-미가 당장 탱고를 추듯이 현안에 대해 밀접히 호흡을 맞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무도회장에서 주변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가볍게 왈츠를 추는 것과 같은 낮은 단계의 신뢰는 쌓아 갈 수 있지 않을까.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은 왈츠를 잘 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2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만찬 석상에서 김 위원장의 제의로 왈츠를 함께 췄다는 러시아의 올가 말리체바 기자는 “김 위원장은 수준급의 춤 실력을 갖고 있었고 파트너가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초 이번 주로 예정됐던 6자회담의 속개가 북한의 거부로 연기돼 9월 셋째 주에나 열릴 듯하다. 미국과의 견해차가 여전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도 몇 차례나 우여곡절이 있을지 모르지만 회담이 속개되면 부디 북-미가 상대를 배려하며 왈츠의 스텝을 밟듯 북핵 문제 해결에 보조를 맞췄으면 좋겠다.

북한은 평화적 핵 이용권을 보장받는 등 ‘조건만 맞으면’ 핵을 포기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미국엔 강경론이 많지만 유연한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4차 6자회담을 전후해 북한은 물론 한국 중국과 함께 (북-미)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힌 것은 북-미 관계의 질적인 변화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북-미 관계의 진전은 한미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이 절실하게 대미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한국에선 비록 일각이지만 반미의 목소리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미국 노래 ‘테네시 왈츠’는 애인과 왈츠를 추던 한 여자가 우연히 마주친 옛 친구를 애인에게 소개했다가 두 사람이 춤을 추는 동안 눈이 맞는 바람에 결국 애인을 빼앗긴 일에 관한 것이다. 남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변해도 한국이 그런 신세는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북-미의 왈츠를 보고 싶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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