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학교인질참사 1년…고려인 유족 마리나 박의 눈물

  • 입력 2005년 8월 29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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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자를 처벌하라.”

186명의 어린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러시아 남부 북오세티야공화국 베슬란 학교인질사태(2004년 9월 1∼3일)가 끝난 지 1년. 그러나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분노와 슬픔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 어머니들은 ‘베슬란 어머니회’를 조직해 사건의 책임자를 찾아내라는 항의 시위를 지속해 왔다. 이들의 시위에 여론이 들끓자 2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다음 달 2일 크렘린으로 오라”며 면담을 제의했다.

어머니회 공동대표 중 일부는 면담에 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어머니회의 공동대표로 유일한 고려인 희생자였던 스베틀라나 최(당시 12세) 양의 어머니인 마리나 박(39) 씨는 28일 본보와의 단독 전화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의 면담 제의는 물론 당국의 주도로 열리는 3일의 추모식 참석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당국의 사과와 진상규명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것.

지난 1년은 평범한 어머니였던 박 씨를 ‘투사’로 만들어 놓았다. 사건 발생 열흘이 지나도록 최 양의 시신은커녕 행방조차 찾을 수 없었다. 유전자 검사 끝에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시커멓게 타버린 딸을 겨우 찾아 땅에 묻었다. 하나뿐인 외손녀의 생환을 기도하던 박 씨의 아버지 빅토르 씨는 며칠 후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의상실에 다니던 박 씨도 충격을 이기지 못해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 그동안 러시아 정부가 해 준 것이라곤 3000달러(약 309만 원)의 보상금이 고작이었다.

더욱 박 씨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러시아 당국의 무성의한 태도. 범인 중 31명을 현장에서 사살하고 1명을 체포했으나 달아난 20∼30명의 범인은 단 1명도 잡지 못했다. 사건의 배후도 오리무중이다.

당시 경찰책임자는 오히려 사태를 잘 수습했다며 모스크바로 영전했고 강제진압 당시 학교가 불타도 “상부의 명령이 없다”는 이유로 출동하지 않았던 소방서장까지 승진했다. 이에 항의해 지난해 12월부터 박 씨 등이 거리로 나오자 오히려 관계기관의 압력과 회유가 이어졌다. 박 씨도 “전화 도청에 시달리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늘 딸에게 “너는 카레옌카(한국 여성)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박 씨는 ‘할아버지의 나라’의 무관심에도 서운해 했다.

“사건이 일어난 후 한국 정부도 구호금을 보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옛 소련 전역에 흩어져 사는 친척들 외에 조국에서는 그 누구도 위로의 말을 전해온 사람이 없어요.”

박 씨는 자신이 러시아인도 한국인도 아니라는 사실이 이토록 외롭게 느껴진 적이 없다며 울먹였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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