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치 아지매 “남은 임기 경제만 신경쓰면 좋겠심더”

  • 입력 2005년 8월 29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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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TV 찬조연설에서 억센 부산 사투리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자갈치 아지매’ 이일순 씨. 그는 “아직도 노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자리를 내놓겠다는 식의 소리는 하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최재호 기자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TV 찬조연설에서 억센 부산 사투리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자갈치 아지매’ 이일순 씨. 그는 “아직도 노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자리를 내놓겠다는 식의 소리는 하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최재호 기자
“남은 임기 2년 6개월이 후딱 지나갔으믄 좋겠심더.”

27일 오후 2시 반 부산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 합동상회.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 찬조연설 방송에 나와 화제를 모았던 ‘자갈치 아지매’ 이일순(李日順·60) 씨가 다소 지친 표정으로 가게에 앉아 있었다.

이날 오전 일을 마치고 친지 자녀의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이어서 고무장갑을 끼고 월남치마를 입었던 평소 차림새와는 달라 보였다.

“요즘 몸도 마음도 불편합니더. 노 대통령의 남은 임기 절반이 끝나야 내도 편해질 거 같아예.”

노 대통령이 고립무원의 처지에 몰리면서 힘겨워하는 모습을 매일 언론을 통해 보고, 주변 사람들이 노 대통령을 못마땅해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것. 이 씨는 노 대통령의 당선에 한몫했다는 책임감 때문에 대통령이 웃으면 자신도 즐겁고 욕을 먹으면 자신이 비난받는 것 같아 괴롭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른 건 몰라도 제발 대통령 자리 내놓겠다는 소리는 안 했으믄 좋겠심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지지하고 뽑아 준 우리 국민의 심정은 어떻겠노 말입니더.”

그러면서도 “얼마나 힘들면 그런 소리를 하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더. 자리를 내놓고서라도 국정을 바로 세우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은데예…”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문제는 경제라예. 경제만 살았어도 저렇게는 안 당할 긴데….”

그가 경영하는 아귀도매점 수입은 전성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주변 상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그래서 먹고살기 힘들다는 동료 상인들 대하기가 쑥스럽다.

“노 후보 뽑으면 서민들 살림살이가 나아질 거라고 얘기하며 지지를 부탁했는데 경제가 이렇게 되니 얼굴 들기 힘들지예.”

하지만 그도 나름대로 노 대통령을 위한 논리와 변명은 있었다.

“그기 우째 대통령 혼자 탓입니꺼. 대통령이 신(神)입니꺼. 앞선 정권이 외환위기를 막지 못하고 카드 대란을 일으켜 지금 이렇게 힘든 거 아닌가예. 그런데도 싸움질만 하는 정치권과 노력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사람들을 보믄 속이 디비집니더.”

사회 풍조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중소기업은 일손이 모자라 외국인 노동자 쓰는데 집에서 놀면서도 할 일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많고, 자갈치시장만 봐도 힘들고 비린내 난다며 젊은 사람들이 아예 일하러 오지 않심더.”

그러나 앞으로 남은 절반의 임기에 노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다른 국민만큼이나 많았다.

“제발 남은 임기에는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경제만 신경 썼으면 좋겠어예. 권력 내놓겠다는 얘기도 안 하고예. 요즘 말수는 좀 줄어들어 안심이 되지만 싫으나 좋으나 모두 국민인데 용서하고 포용해 함께 가려고 하는 마음을 좀 더 써야 할 거 같아예. 내 선택이 부끄러운 일이 되지 않도록 노 대통령이 남은 임기는 더 열심히 하길 바랄 뿐입니더.”

그는 “야당과 언론도 마음 크게 먹고 노 대통령을 좀 도와 주이소. 그래도 우리 대통령 아입니꺼. 잘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꺼”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평범한 자갈치 아지매였던 그는 우연히 노 대통령의 찬조연설을 맡게 되면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정치적 격랑에 휩쓸려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그는 ‘2002년이 다시 온다면 그때도 찬조연설을 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때가 돼 봐야 알겠지만 아마 다시 하지 않을까 싶어예”라고 대답했다.

부산=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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