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기초체력 떨어져간다]일손 줄어들고 투자꺼려

  • 입력 2005년 8월 29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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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이미 4%대로 떨어졌으며 더 추락할 수도 있다는 한국은행의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우리 경제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저성장의 늪을 헤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은 접어 두고라도 잠재성장률 하락의 원인이 하나같이 쉽게 치유하기 힘든 것들이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등 핵심 업종도 부품 소재산업 기반이 미약해 수출 호조의 덕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구조인 것으로 분석됐다.

○ 잠재성장률 왜 떨어졌나

한은은 잠재성장률 하락의 원인으로 △세계적 경쟁 심화 △산업 연관관계 약화 △투자 위축 △노동력 공급 둔화 △금융 중개기능 약화 △경제 불안정성 증대 등을 꼽았다.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노동, 자본, 생산성 등 모든 요소에 병이 들었다는 얘기다.

대외적으로는 치열해진 국가 간의 경쟁이 꼽혔다. 어느 나라나 만들 수 있는 제품은 후발국에 밀리고 미국이나 일본처럼 기술이 앞서지도 못해 어정쩡한 상황이라는 것.

예를 들어 미국 컴퓨터시장에서 한국제품 점유율은 1999년 6.8%에서 지난해 4.3%로 떨어진 반면 중국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9.0%에서 37.7%로 급증했다.

성장의 원동력이던 설비투자는 최근 4년간 연평균 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기업들이 국내에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앙대 홍기택(洪起澤·경제학) 교수는 “당장 기업이 투자를 하려 해도 땅값이 폭등해 수지타산이 맞지 않고 관할 지방자치단체도 이것저것 요구하는 게 많아 꺼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구나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노동력도 줄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은 안전한 가계대출에 주력하며 기업대출을 꺼리고 있다.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증대된 사회적 불안정성도 잠재성장률을 낮춘 원인이다.

여기에 정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됐다. 한은은 올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를 인용하며 정부의 정책 효율성 및 제도적 안정성이 질적 측면에서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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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기술(IT) 강국의 현주소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산업구조 변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IT 관련 산업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IT 산업의 약진이 국내 생산과 고용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

이에 대해 한은은 2000년 현재 IT 산업의 부품 국산화율이 55.6%에 불과해 전체 제조업 평균(69.9%)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한국은 세계 1위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휴대전화 생산국이다. 그러나 전자부품연구원(KETI)이 올해 초 실시한 ‘국산화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제조원가의 12.5%를 차지하는 핵심 칩은 미국 퀄컴에서 100% 수입한다. 제조원가의 13.5%를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도 8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올해 초 전자산업진흥회가 발표한 ‘주요 디지털 제품의 국산화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캠코더의 국산화율은 액수 기준으로 35%, 디지털 카메라는 51%, 유럽통화방식(GSM) 휴대전화는 67%였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에 들어가는 고체촬상소자(CCD·일반 카메라에서 필름에 해당하는 이미지 저장 장치)와 소형 액정표시장치(LCD) 등은 100% 일본에서 수입한다.

결국 부품 국산화 노력이 시급하다는 결론이다. 한은은 부품 국산화율을 10%포인트 높이면 경제성장률이 1.1%포인트 높아지고 일자리 21만 개가 새로 만들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 잠재성장률 회복하려면…

한은은 향후 10년간의 잠재성장률을 4.0∼5.2%로 예상했다. 5%대의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나려면 생산성 향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규모 확대와 저출산으로 노동과 자본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과 인적자본 투자를 확대하고 △소재부품 국산화율 제고로 파급효과를 높이며 △기업대출 확대를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은 조사국 문소상(文素祥) 과장은 “특히 가계대출에 치중하는 금융회사들의 관행은 여신 심사기능을 강화해 비교적 단기에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투자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강대 김경환(金京煥·경제학) 교수는 “수도권 공장입지 규제 때문에 대기업들이 계획만 세워 놓고 실행하지 못한 투자 규모가 5조 원”이라며 “정부가 국가 균형발전을 내세워 수도권 규제를 강화하는 바람에 기업들이 해외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崔公弼) 선임연구위원은 “기업과 함께 우리 경제의 ‘성장 엔진’인 부유층이 국내에서 돈을 쓸 수 있도록 교육, 의료, 법률 등 고급 서비스 관련 산업을 키우고 질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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