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인규/시장원리 누가 헷갈리게 하나

  • 입력 2005년 8월 29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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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는 배 아픈 사람이 많다. 그들은 직장이 있는 강원 춘천시에 아파트를 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 강남이나 경기 성남시 분당에 아파트를 장만한 직장 동료들을 생각하면 배가 아플 만도 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배앓이는 국민 대다수가 앓고 있는 병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잡겠다”던 강남 아파트 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기만 하니 노무현 대통령도 골치깨나 아플 것이다.

시장은 강남 아파트와 같은 상품을 어느 기업이 얼마나 생산하고 또 누가 소비해야 하는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결정하는 수단이다. 시장에서의 경쟁가격은 그 상품을 가장 낮은 비용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업에 생산을 맡기고, 아울러 누가 그 상품을 가장 간절히 원하는지 찾아내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정부가 이 역할을 떠맡게 되면 효율성보다는 정치적으로 가까운 기업과 사람들에게 생산과 소비를 맡기게 되어 비효율이 발생한다.

하지만 시장기구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유재산권의 확립이 전제되어야 한다. 토지나 아파트와 같은 희소한 자원에 대한 사유재산권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기업이나 개인들의 투자에 대한 안정적인 회수가 보장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투자 인센티브가 생겨나지 않으므로 시장의 효율성도 사라진다.

사유재산권에 기초한 시장경제제도는 개인의 능력과 운에 따라 부(富)의 분배가 불평등해진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누진적 소득세와 상속세를 도입하는 등의 끊임없는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강남 아파트 값 급등으로 배 아픈 국민이 많아지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시장경제제도는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배 아픈 병’을 고치려던 사회주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제도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다. 그런 시장경제제도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노 대통령은 25일 KBS 1TV ‘참여정부 2년 6개월, 노무현 대통령에게 듣는다’에 출연해 “부동산이야말로 시장이 완전히 실패한 영역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사유재산의 원리, 시장원리 이런 부분을 가지고 헷갈리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등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노 대통령의 이 발언은 아파트 값 급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장과 사유재산권을 부정하는 정책을 취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생각과는 달리 부동산 시장은 실패하지 않았다. 오히려 택지 공급을 게을리 한 참여정부에 ‘아파트 값 급등’이라는 경고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실패한 것은 시장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다. 시장의 경고를 무시한 채 지금처럼 투기 억제책에만 매달린다면 단기적으로 ‘반짝 효과’는 보겠으나 장기적으로 아파트 값은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하고 말 것이다.

노 대통령은 또 “시장이 국민 생활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이 시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서처럼 정부가 시장을 대체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참여정부 들어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 가장 주요한 원인은 노 대통령과 좌파 386 권력자들이 시장과 기업을 불신하고 사유재산권을 가볍게 보는 데 있다.

2001년 이후 우리 기업들의 설비투자 증가율이 연평균 0.3%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거위를 잡아 배를 가르겠다는데 어느 거위가 황금알을 낳으려 들겠는가.

재임 내내 좌파 386들에게 시달렸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작년 7월 “(우리나라가) 시장경제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우려했다. 지금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 같아 매우 염려스럽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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