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21세기 新고전 50권]<18>드리나 강의 다리

  • 입력 2005년 8월 29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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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유고슬라비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구유고연방이 해체되어 형성된 오늘날의 국가 명칭들이다.

이 구유고연방 출신 작가 이보 안드리치(1892∼1975)는 자신의 고향 발칸의 생생한 역사를 담고 있는 보스니아 이야기를 3부작에 걸쳐 완성하였는데, 바로 ‘드리나 강의 다리’, ‘트라브니크 연대기’, ‘아가씨’가 그것들이다.

이 중 1961년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드리나 강의 다리’는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비셰그라드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현실에 바탕을 둔 서사적 연대기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책 제목처럼 사람이 아니라 11개의 아치를 가진 다리다.

그 다리는 드리나 강가 비셰그라드라는 마을에 있다. 이 작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하고 견고한 다리이다.

이 다리를 세운 주인공은 보스니아 지역이 터키제국의 지배하에 있을 때 세금의 일환으로 끌려간 아이들 중 하나인 열 살짜리 소년이다. 소년은 비록 이국인 터키제국으로 끌려갔지만 술탄의 황실에서 젊고 용감한 장군이 되었고 뒤에 명성을 지닌 정치가가 되었다.

그가 나이 먹어 고향 마을에 대한 애틋한 마음으로 세운 것이 바로 드리나 강의 다리이다. 다리 공사는 5년간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주변에서는 물론 대도시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돌다리가 작은 마을 비셰그라드에 생긴 것이다.

비셰그라드가 자리하고 있는 보스니아는 지리적으로 가깝게는 다뉴브 강 주변 국가들과 멀리는 이스탄불에 이르는 동방 지역, 아드리아 해변, 그 너머 유럽문화를 연결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제 다리는 두 지역을 오고가는 여행자들과 정복자들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으며, 동시에 마을은 다리를 중심으로 확장되어 간다. 다리 중앙에는 테라스와 카피야(터키어로 ‘문’을 뜻함)가 있는데, 카피야가 곧 이 소설의 중앙무대이다.

소설 ‘드리나 강의 다리’에는 이렇다 할 만한 주인공이 없다. 그러나 다리는 그 자체로 역사의 무대이자 목격자이며, 관찰자로 400여 년에 걸친 인간사의 산증인이다.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카피야와 그 주위에서는 첫사랑의 환상과 오고가며 마주치는 첫 눈길들, 이성의 유혹과 속삭임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또한 최초의 거래들과 장사, 분쟁과 협약, 약속과 기다림도 있었다.”

사람들은 공공의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그곳에 모였고, 젊은이들은 노래와 농담을 위해 모여들었다.

큰 사건과 역사적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성명서와 공고들이 나붙었으며 처형당한 사람들의 머리를 말뚝에 꽂아 여기저기 매달기도 했다.

비극적 냄새가 축축한 이 소설은 무슬림, 정교도, 가톨릭교도와 유대교도들 간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과 더불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전전긍긍하거나 의연한 주인공들의 내면세계를 서술하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각 문화집단 간의 융화와 갈등이 만들어낸 발칸 특유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한애규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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