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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히딩크와 다시 할 수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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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히딩크와 다시 할 수 없었나

입력 2005-08-27 11:31수정 2009-10-0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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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와 함께라면…”

‘2002년 여름’, 당시의 감동과 전율이 지금도 몸속을 흐른다.

한반도는 거대한 붉은 물결로 뒤덮였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거리로 뛰어 나와 ‘대한민국’을 외치며 월드컵 4강의 기쁨을 누렸다.

2002년 여름 만큼은 정치와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함께 움직이는 한국민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한반도를 하나로 결집시키고 국민들에게 건국 후 가장 기쁜 순간을 만끽하게 해준 주인공은 누구인가?

대표팀 선수들, 선수들을 응원한 4500만 붉은 악마 등 모든 사람들의 노력이 일궈낸 결실이지만, 네덜란드에서 날아온 ‘히딩크’의 힘이 절대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01년 1월 한국땅을 밟은 히딩크는 국민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거대한 선물을 안기며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월드컵을 끝으로 그는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가 PSV 아인트호벤의 감독을 맡으며 또 다른 축구 생활을 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발생한다. “월드컵을 4강으로 이끈 히딩크와 재계약을 체결할 수 없었느냐”가 그 것. 축구팬이라면 “히딩크와 다시 한 번 4강 신화를 재현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왜 한국축구는 2002 월드컵 후 히딩크와 결별했으며 새로운 감독을 찾았어야 했는지, 그리고 쿠엘류와 본프레레 체제에서의 거듭된 부진 속에서 히딩크의 이름은 끝까지 거론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자.

▶PSV 아인트호벤과의 사전 접촉

한국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끈 히딩크는 월드컵 후 PSV 아인트호벤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2회 연속 자신이 지도한 팀을 월드컵 4강으로 이끈 히딩크의 능력을 아인트호벤은 그냥 두지 않았다. 히딩크의 몸값이 폭등하고 있긴 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히딩크의 의중을 파악하고 미리 손길을 뻗친 것이다.

▶이용수 사단의 해체

히딩크를 감독으로 결정한 당시 기술위원회는 이용수 기술위원장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그렇지만 1년 8개월 동안 히딩크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대표팀의 4강 진출에 적지 않은 공을 세운 이용수 사단은 월드컵이 끝남과 동시에 곧바로 해체됐다. 축구팬들로부터 능력을 인정 받았지만, 이용수 위원장은 재임 대신 ‘평범한 축구인으로의 회귀(回歸)’를 선택했다.

히딩크를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한 이용수 사단이 자리를 떠남에 따라 히딩크의 재계약 불발도 사실상 물 건너 간 것. 이용수 사단에 이어 기술위원회를 맡은 김진국 사단은 아인트호벤과 계약을 맺은 히딩크의 이름을 처음부터 배제했다고 한다.

▶대한축구협회와 히딩크의 보이지 않는 갈등

대한축구협회와 히딩크의 갈등은 축구팬들에게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 영리하고 자존심이 강한 히딩크와 대한축구협회 사이에는 갈등이 적지 않았는데,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양측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대표팀의 4강 진출을 이끈 히딩크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축구협회의 부담 또한 커져 갔고, 이 때문에 축구협회는 ‘국민적 영웅’ 히딩크를 오랫동안 한국에 둘 수 없었다.

히딩크의 후임 감독으로 쿠엘류와 본프레레가 선택된 것도 히딩크와 같은 까다로운 스타일이 아닌 축구협회와 함께 할 수 있는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쿠엘류와 본프레레가 졸전을 거듭하던 상황에서 히딩크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4강에 대한 두려움과 자존심을 굽힐 수 없었던 히딩크

히딩크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도 있다. ‘월드컵 4강 진출’은 대한민국 축구팬들의 눈높이를 올려 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축구는 세계 정상급 수준이며 월드컵에서 언제든지 16강 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 때문에 히딩크가 다시 감독을 맡아다면 성적 부담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은 4강 진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1번 시드 확보’, ‘홈필드 어드밴티지’, ‘붉은 악마의 뜨거운 응원’, ‘더운 날씨’ 등 실력 외적인 부분에서의 도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월드컵부터는 이러한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오로지 실력으로 맞서야 하며 유럽의 텃새를 상대로 경기를 펼쳐야 하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두기란 쉽지 않다. 머리 좋은 히딩크가 이러한 점을 몰랐을 리 없다.

히딩크가 스스로 감독을 맡겠다고 나설 수도 없었다. 히딩크가 먼저 말을 꺼냈을 경우 자신이 원하는대로 팀을 꾸려갈 수 없는데다 몸값마저 하락한다. 또한 자신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이용수 기술 위원장도 자리를 떠나고 없는 상태였다.

결국 히딩크는 한국 대신 캥거루의 나라 호주를 선택했다. 현 호주대표팀은 유럽파가 주축을 이룬 역대 최강의 전력. 히딩크로서는 3회 연속 월드컵 무대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PSV 아인트호벤의 감독까지 겸하고 있어 유럽 무대에서도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히딩크가 천재 감독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본프레레 감독의 사퇴로 한국 축구는 또 한 번의 시련을 맞게 됐다. 2006독일월드컵까지 남은 시간은 약 10개월. 새로운 사령탑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히딩크가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임동훈 스포츠동아 기자 arod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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