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위안부 불법동원’ 외교 쟁점화

  • 입력 2005년 8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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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 외교문서공개열람실에서 직원들이 한일회담 관련 공개 문서들을 정리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2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 외교문서공개열람실에서 직원들이 한일회담 관련 공개 문서들을 정리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정부가 26일 밝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방안의 큰 골격은 ‘정부의 지원’과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 실현’으로 이뤄져 있다.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의 배상 대상은 징용 및 징병을 당한 군인 군속 노무자로 제한됐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와 중국 하이난(海南) 섬 학살사건 등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등 법적 책임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또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이 한국 정부에 지급한 돈이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배분되지 않은 점을 감안해 정부는 자체적으로 이들에게 보상을 하기로 했다.

▽위안부 및 하이난 섬 학살사건 배상=정부는 이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고 향후 유엔 인권위원회 등 국제기구를 통해 외교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나서서 직접 일본 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요구하지는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정부는 “외교협정 문서 전체를 검토한 결과 법적 근거를 가지고 일본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또 일본 정부가 최근 외무성 홈페이지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여기엔 일본 정부로부터 법적 책임이 있다는 시인을 우선 받아낸 뒤 위안부들이 이를 근거로 개별적인 소송 등을 통해 배상을 받도록 하는 길을 터주려는 전략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정부 대 정부 차원의 배상 요구에 따른 외교적 마찰을 피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정부의 지원 결정 배경=우선 박정희(朴正熙) 군사정부가 1975∼77년 일본에서 피해 보상금 명목으로 받은 3억 달러를 제대로 배분하지 않은 데 대해 현 정부가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또 정부의 지원 결정은 한일협정으로 피해자 중 군인과 군속 노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피해보상이 완료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부는 일본에 끌려가 공장에서 일했던 노무자가 지급받지 못한 임금도 대신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또 사할린 동포와 원폭 피해자에 대한 대책도 강구키로 했다.

이에 따라 논란이 돼 왔던 정부의 ‘개인 청구권’ 포기 문제도 수그러들 전망이다. 개인이 일본에 대해 청구할 부분을 한국 정부가 지원해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1961년 4월 28일 한일 5차회담 예비회담에서 한국 대표는 “나라가 (개인을) 대신해 해결하고자 한다”며 개인 청구권을 포기했고, 이후 협상은 정부 대 정부 차원의 일괄 배상으로 마무리됐다. 올해 1월 한일협정 문서 일부가 공개되면서 이 사실이 드러나자 피해자 단체는 “한일 양국 정부가 희생자들을 무시하고 야합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이난(海南) 섬 학살사건:

1943년부터 일본이 중국 최남단인 하이난 섬에 조선인 2000여 명을 ‘조선보국대(朝鮮報國隊)’란 이름으로 끌고 가 비행장과 항만 건설, 철도 공사와 철광석 채굴 등에 동원한 뒤 패전과 함께 철수하면서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이들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이 사건을 시인하지 않고 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피해자 지원 문답풀이▼

일제강점기 피해자에 대한 정부 지원책을 문답으로 알아봤다.

Q: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가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A: 먼저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에 신고부터 해야 한다. 6월 30일까지 1차 접수가 끝났고 가능한한 빨리 2차 접수를 실시할 예정이다. 전국 시군구청에서도 접수시킬 수 있다.

Q: 필요한 서류는….

A: 강제동원됐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가 꼭 필요하다. 탄광에 끌려간 뒤 탄광에서 찍은 사진, 부모가 보낸 편지, 징병통지서 등 강제동원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자료는 모두 가능하다.

Q: 정부 지원은 금전 지원을 뜻하나.

A: 금전 지원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의료지원, 복지확대 등 금전 이외의 방식으로 지원될 수도 있다.

Q: 정부 지원 규모는….

A: 경우에 따라 다르다. 일단 정부는 일본에 강제동원돼 사망한 한국인의 유가족에게 1975∼77년 1인당 약 30만 원씩 보상금을 지급했다. 앞으로 부상자, 부상 당하지 않은 자, 노동 후 돈을 받지 못한 자 등으로 나눠 차등 지원할 방침이다.

Q: 언제쯤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나.

A: 빨라야 1, 2년 후다. 강제동원 피해 접수는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진상조사 과정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2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1차 피해접수를 끝내고 총 20만3055건의 신고를 접수했지만 8월 현재 심사를 끝낸 것은 약 1%에 불과하다. 증거 서류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Q: 정부 지원이 법으로 보장되나.

A: 그렇다.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지원 법률안을 만들어 10월경 공청회를 거친 뒤 확정할 방침이다. 올해 정기국회를 통과하면 이르면 내년 초 법안이 시행될 예정이다.

Q: 왜 배상이나 보상이 아니고 지원인가.

A: 배상은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보전, 보상은 합법 행위에 대한 손해보전을 뜻한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시 배상과 보상의 개념을 모두 담아 청구권 협정으로 타결지었다. 따라서 과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 배상, 보상, 청구권 등의 용어를 다시 사용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부적절하고 국내적으로도 그렇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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