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21세기 新고전 50권]<17>이중나선

  • 입력 2005년 8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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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절대로 뒷걸음질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돌담불 틈새에 기어든 뱀의 꼬리를 잡았다 치자. 아무리 잡아당겨 봐라. 몸뚱어리가 잘려 나갔으면 나갔지 끌려 나오지 않는다. 바짝 선 배 바닥의 비늘(복린·腹鱗)들이 돌에 걸려서 뒤로 밀려나지 못한다. 과학이라는 괴물도 똑 그렇다. 뒤로 가는 법이 없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놈은 진화가 빠르고 침투력이 무척 강하다.

생물이 아닌 분야에서도 DNA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일이나 사건이 매우 중요하거나 정수(精髓), 핵, 중심, 기질(基質)이 된다는 의미로 DNA를 비유하여 쓴다. ‘대한민국의 DNA가 거기에 녹아 있다’, ‘그것은 오늘 토론의 DNA다’, ‘DNA가 서로 다른 탓이다’, ‘DNA를 탓하지 말 것이다’, ‘영혼의 DNA, 민족의 원형질인 DNA를 계발할 것이다’ 등등.

1963년, 필자가 대학 4학년 때 처음으로 ‘DNA는 꽈배기처럼 두 줄로 되어 있고 그 둘을 잇는 것은 염기(鹽基)다. 염기에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넷이 있다’는 정도를 배웠다.

그리고 1962년에 이미 ‘DNA 이중나선구조’를 밝힌 공으로 제임스 듀이 잡슨과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가 공동으로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받았고 1967년에 여기 소개하는 책을 잡슨이 썼다.

그 정도의 기초적인 일로 시작한 핵산 연구가 이제는 우리의 생활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어느새 ‘DNA 검사’를 해서 지진해일로 실종된 사람을 구분해내는가 하면 친자 감별이나 범죄자를 찾아내는 데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DNA는 A, T, G, C라는 단지 4개의 문자(文字)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의 배열이 유전은 물론 진화에다 생명(세포)의 생사까지 책임지고 있다니, 어찌 보면 참 간단하고 어떻게 보면 한없이 복잡한 것이 생명(DNA)의 세계다.

잡슨의 ‘이중나선’에서 세계적인 몇몇 생화학자가 서로 먼저 ‘DNA 구조’를 밝히려고 죽살이치는 것을 본다. “감기에는 비타민C가 좋다”고 주장한 생화학자인 라이너스 폴링이 DNA구조를 논문을 통해 발표하지만 폴링의 발표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미친 듯이 좋아하는 두 사람! “그럼 그렇지,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잡슨과 크릭. 하여,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절감하게 된다. 선취특권 말이다.

“이중나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폴링도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감동된 모양이다. 다른 때 같으면 폴링은 그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구조를 옹호했을 것이지만 우리가 만든 상보적(相補的) DNA분자의 구조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생물학적 의의 앞에 그도 미련 없이 깨끗이 물러난 것이다….”

몇몇 학자가 벌이는 DNA 구조 밝히기 경쟁이 너무도 치열했음을 읽는다. 한마디로 경마장의 말들이 경주하는 듯 스릴까지 느낀다.

이 책은 결코 까다로운 핵산 설명을 하지 않는다. 노벨상을 눈앞에 놓고 과학자들이 펼친 경쟁과 집념의 면면들을 읽을 수 있는 한 편의 드라마틱한 수필이다.

권오길 강원대 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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