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행복한 고물상’…사랑있어 행복했네

  • 입력 2005년 8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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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고물상/이철환 지음/216쪽·8500원·랜덤하우스중앙

“육성회비 안 낸 사람 자리에서 일어나봐!”

남자 담임선생님의 호통 소리에 내 가슴 속에 돌덩이 하나가 쿵 하고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봐!” “…….”

“내일까지 육성회비 꼭 가져와. 그렇지 않으면 엄마를 모셔오든지. 알았지?” “네….” “ 그리고 오늘 교실 청소는 네가 해!”

함께 집에 갈 형에게 기다려 달라고 말하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을 때였다. 형이 복도 한쪽에서 두 손을 든 채 꿇어 앉아 있었다. 형네 담임선생님은 형에게 다그치듯 묻고 있었다.

“내일까지 육성회비를 내든지 아니면 엄마를 모시고 와. 알았어?” “네….” “너의 아버지는 뭐하셔?” “고물상 하시는데요….”

형은 눈가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나는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아무 말 없이 계단을 내려왔다.

수백만 독자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던 ‘연탄길’의 저자. 그가 들려주는 유년시절의 삽화들은 가슴이 아리도록 찡하다. 그러나 저자는 그 시절의 허기(虛飢)를, 그 아픈 기억들을 영혼의 아랫목에서 폴폴 김을 내는 따스한 밥상에 가지런히 차려 올린다.

“세상에 고물 아닌 것이 없던 시절, 그러나 사랑으로 수리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고물상을 하며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기에도 버거운 형편이었지만 껌팔이 소녀를 데려다 손수 라면을 끓여주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있었기에 가족들은 결코 마음까지 가난하지는 않았다.

고물상은 저자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문을 닫는다. 더 이상 가게 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행복한 고물상’이라는 간판을 내리던 날 가족들 모두가 울었다.

“함박눈이 쏟아지던 그날 밤, 하얀 눈을 뒤집어쓴 아버지가 자전거 한 대를 끌고 오셨다. 평생을 분신처럼 여겼던 고물 리어카를 처분해 나와 형에게 새 자전거를 사다 주신 것이다. 아, 꿈속에서라도 갖고 싶었던 자전거!

그러나 어느 사이, 마음 한 구석은 펑하고 젖어들기 시작했다. 이 새 자전거는 어쩌면 평생 고물만 만져 온 아버지가 처음으로 만져보는 새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기우 문화전문 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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