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쿨~한테 소개팅 매너는 ‘꽝!’

  • 입력 2005년 8월 26일 03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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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이진선 기자
일러스트레이션=이진선 기자
《32세 여자 A 씨가 ‘소개팅’에 나갔을 때였다. 절친한 직장 동료가 주선한 것이어서 기대감에 부풀어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메이크업에도 꽤 공을 들였다. 아뿔싸. 상대 남자는 키 작고 뚱뚱한 데다 손등에 털까지 수북했다.

‘딱 한 시간만 참자’며 내키지 않는 미소를 짓고 있는데 이 남자, 당당하게 ‘말씀하신다’. “오늘 깜빡 잊고 지갑을 안 가져왔네요.”

그녀는 1차 식사, 2차 커피까지 몽땅 내면서도 마음을 다스리려 했다. 그런데 이 남자, 그녀가 실수로 동전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도 멍하게 보기만 한다.

그녀의 넋두리. “소개팅 매너가 어쩌다 이렇게 실종됐을까요. 예의가 너무 없어요.”》

○이런 황당한 사람도 있어요

케이트 허드슨과 매튜 매커너히가 주연한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 ‘10일 만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을 기억하는가. 남자를 떼어 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던 여자의 눈물겨운 노력을….

요즘 소개팅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젊은 세대의 황당한 매너를 들어 보면, 마치 상대에게 차이고 싶어 안달하는 것으로 비칠 정도이다.

▽호구조사형: 상대 집안의 경제력을 캐묻는다.

의사와 소개팅했다. 가수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를 듣고 눈물을 흘리던 낭만 청년이라는 주선자의 말을 믿었다. 웬걸. 그는 만나자마자 우리 집 차가 몇 대이며 차종은 무엇인지 등 호구조사를 시작했다.(30대 여자)

▽정서불안형: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한다.

투명 테이블이 있는 카페에서 소개팅을 했다. 그녀는 만난 지 5분 만에 “나 마음에 들어요?”라고 묻더니, 이내 두 다리를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풍 걸렸어요?”라고 물었더니 피곤해서 그렇다고 했다.(20대 남자)

▽초스피드 건달형: 불량 복장으로 나와 금세 헤어진다.

목둘레가 늘어난 흰색 면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소개팅 자리에 나와 담배만 뻑뻑 피워대던 그 남자. 10분도 안 돼 “나가자”고 하더니, 찻값도 안 내고 카페 문을 열고 사라졌다.(30대 여자)

▽비관형: 세상 고민 다한다.

그녀는 만나자마자 “40세가 될 때 죽겠다”고 했다.

세상은 아름답고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30여 분 위로했지만 “서서히 나를 죽이겠다”고 말할 땐 엽기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곧 죽을 여자와 왜 만나겠는가. (20대 남자)

▽친절한 금자씨형: 마음에 안 든다며 흘겨본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 흘겨보기에 나도 같이 흘겨봤다. ‘침묵의 눈싸움’이 20여 분 흘렀을까. 그녀가 먼저 일어섰다.(30대 남자)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게 쿨(cool)하다”

가을이 되면 싱글 남녀들은 옆구리를 따뜻하게 해 줄 연인이 그리워진다. 그러나 길 가다 어깨가 부딪혀 두 눈에 하트가 그려지는 짝을 찾기란 로또복권 당첨만큼 영화 같은 일.

그래서 친분있는 사람의 주선으로 상대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는 소개팅에 기대를 건다. 뉴욕에서도 과학적 데이터 분석을 통한 전문 중매쟁이의 소개팅이 어느 때보다 인기라는 게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최근 보도다.

문제는 개인적이고 성급한 행태를 보이는 20, 30대들이 소개팅 자리에서도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던 베이비 붐 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의 입장만 여과없이 드러낸다는 것이다.

소개팅에서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30분 만에 자리를 뜬다는 20대 남자의 말을 들어보자.

“속마음을 숨기고 웃으며 앉아 있는 게 오히려 위선적이지 않나요. ‘내 타입이 아니야’라고 빨리 표현하는 것이 훨씬 쿨하다고 생각해요.”

심리학자 심영섭 씨는 “남녀 관계가 물질주의에 편입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먼저 생각하는 세태로 인해 사람의 내면을 천천히 들여다보기보다 외모와 경제력 등 조건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정(情)이나 사회적 동지 의식이 결여된 젊은 세대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만날 경우 자신이 함께 초라해 보이는 ‘역후광 효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아니다’ 싶으면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 이에 대해 심 씨는 “인간 관계에 대한 매너가 없어졌다”고 말한다.

결혼정보업체 ‘좋은 만남 선우’ 성아영 커플 매니저의 말은 진부한 듯하지만 새겨들을 만하다.

“상대가 마음에 드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에 대한 매너는 곧 인격입니다. 소개팅에서 만나 함께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연입니다. 작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소개팅 때 여자가 남자에게 듣기 싫어하는 말(출처:인터넷 포털사이트 인티즌)

-그때 그 남자와는 왜 헤어졌어요?

-공주병 아니세요?

-혹시 쌍꺼풀 수술했나요?

-사는 게 뭐라고 생각합니까?

-왜 아직도 결혼 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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