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MBC ‘해방둥이 패전둥이’ 28일 방영

  • 입력 2005년 8월 2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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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경기 수원의 삼성 전자레인지 공장. 한국과 일본 모두 경제 발전의 근간이 된 것은 전자 산업이었다. 사진 제공 MBC
1980년대 초반 경기 수원의 삼성 전자레인지 공장. 한국과 일본 모두 경제 발전의 근간이 된 것은 전자 산업이었다. 사진 제공 MBC
한 나라에는 압제자로부터 해방한 해였고 한 나라에는 세계대전에서 패한 해였다. 두 나라 모두 그해, 1945년이 경제 개발의 출발점이었다. 한국의 1945년생 해방둥이들은 식민지 수탈이 남긴 궁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경제 성장에 매달렸다. 일본의 1945년생 패전둥이들은 수년간의 전쟁을 자력으로 치른 기술력을 바탕으로 재건을 실천한다.

MBC는 28일 밤 11시 30분 광복 60주년 특집 한일공동기획 ‘해방둥이 패전둥이’(연출 최병륜) 1부를 방영한다. 2000년부터 일본 후지TV와 공동으로 주제를 잡아 양국을 비교해 온 이 기획은 올해 ‘경제’를 통해 한일 경쟁 관계를 진단했다. 양국 경제 개발의 주역인 해방둥이와 패전둥이 또래들의 활약을 통해서다.

한국의 해방둥이들은 성년이 되어서도 궁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됐을 때 굴욕감에 분개했지만 한편으로 가난을 극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일본의 패전둥이들은 이미 한국의 해방둥이들을 저만큼 앞질러 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열 살 무렵, 한국의 6·25전쟁에서 벌어들인 외화를 바탕으로 역사상 최대 호황이라는 ‘신무경기(神武景氣)’를 맞았다. 1956년에는 경제백서를 통해 ‘이제 전후가 아니다’라고까지 호언했다.

양국 모두 성장의 동력이 된 것은 전자산업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한국의 기술은 백지 상태였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렇게 돌아본다. “기술도 없고 사람도 없어 외국회사와 기술제휴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미국과 유럽 여러 회사와 접촉했지만 전부 거절당했다.” 그래서 한국을 생산기지로만 활용하려 했던 일본 회사들과 불리한 조건으로 합작해야 했다.

당시 활약했던 기술자들은 일본 제품을 무조건 분해해서 똑같이 만들었다. 창의력 없는 복사일 뿐이라고 해서 ‘데드 카피(dead copy)’로 불렸다. 그나마 개인적인 친분을 최대한 활용했고, 때로는 막무가내로 찾아가 읍소하면서 기술을 얻어냈다.

1부에서는 이렇게 개발의 많은 부분을 일본에 의존해온 1980년대까지를 조명한다. 9월 4일 같은 시간 방영되는 2부에서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시대로의 전환이 가져온 양국 관계의 역전과 재도약의 발판을 다지는 일본 기업들을 살펴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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