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해산 승부수로 총선 치르는 獨 슈뢰더-日 고이즈미

  • 입력 2005년 8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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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왼쪽)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지난해 6월 미국 조지아 주에서 열린 G8 정상회의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왼쪽)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지난해 6월 미국 조지아 주에서 열린 G8 정상회의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참 부럽다. 한국 대통령은 이게 뭐냐. 자기 자리를 걸고 승부를 할 수도 없지 않은가.” 24일 임기 반환점에 즈음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부럽다’고 언급한 두 총리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슈뢰더 총리는 지난달 1일, 고이즈미 총리는 이달 8일 각각 ‘의회 해산 후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들이 던진 승부수의 뚜껑이 열릴 시점은 일본은 9월 11일, 독일은 9월 18일로 임박해 있다. 양국의 정치 지형을 볼 때 두 총리의 행로가 꼭 같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두 총리는 노 대통령과 어떤 점이 닮았고, 다른 것일까.》

●獨 슈뢰더, ‘판’깨고 직접호소

슈뢰더 독일 총리는 논쟁을 좋아한다. 그는 1998년 총선 때 사상계의 거두인 위르겐 하버마스 씨와 세계화 문제를 놓고 ‘한판 붙었다’. 사회민주당의 총리 후보였던 그는 세계화에 대한 무조건 거부 대신 공동체와 참여를 강조하는 실용주의를 표방했다.

그는 평범한 유권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후련해 하는 점이 노 대통령과 닮았다.

‘통일총리’인 기독교민주연합의 헬무트 콜 씨를 누르고 1998년 총리로 취임한 그는 2003년 정치적 소신을 담아 ‘어젠다 2010’이라는 정책요강을 발표했다. 복지예산을 삭감하는 등 사민당으로서는 파격적인 ‘우파적’ 조치들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 사민당의 텃밭인 근로자층의 지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가 지난달 초 총리 불신임을 스스로 ‘기획’한 것도 5월 루르 공업지대의 지방의회 선거에서 패한 충격 때문이었다. 국민의 저조한 지지에다 상원도 기민련이 장악한 상태로는 정국을 이끌 수 없다고 본 것.

이런 점에서 그의 고민은 노 대통령과 비슷하다. 실용주의로 지지를 얻으려 했으나 ‘국민이 내 진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상실감에 시달려 왔고, 정국이 여소야대로 전환됐다. 결국 기존의 판을 깨고 국민에게 호소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 대국민 직접 호소로 정면 돌파를 모색해 온 노 대통령이 매력을 느낄 만하다.

연정(聯政)의 가능성도 주목된다. 최근 총선 승리가 점쳐지는 야당 기민련-기독교사회동맹 연합이 중도 자유민주당을 끌어들여도 과반수 의석에 미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사민당을 정권 파트너로 끌어들여 ‘대연정’이 이뤄질 경우 ‘어젠다 2010’으로 대표되는 슈뢰더 총리의 실용 개혁정책은 승계될 전망이 유력하다.

노 대통령이 ‘정권을 바꿔서라도 개혁은 해야겠다는 것’이라고 슈뢰더 총리를 높이 평가한 데는 연정안이 이해받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도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日고이즈미,‘허’찔러 정면승부

“지금 선거를 하면 자민당은 야당이 된다. 그래도 중의원을 해산하겠는가.”(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 “물론이다.”(고이즈미 총리) “당신은 ‘헨진(變人·이상한 사람)’보다도 더한 사람이다.”(모리) “그래도 좋다. 해산한다.”(고이즈미)

이달 초 일본 참의원 우정민영화 표결을 앞두고 전현직 총리가 나눈 대화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기질이 분명히 드러난다. 모리 전 총리는 ‘정치는 현실’이라며 설득했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살해돼도 좋다는 각오”라며 맞섰다. 이때만 해도 자민당 내에선 고이즈미 총리를 ‘아집에 사로잡혀 정권까지 내놓는 구제불능의 고집불통’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정작 중의원이 해산되자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은 50%를 훌쩍 넘었다. 지금은 전국 각지의 자민당 후보들이 그의 지원 유세에 목을 맨다.

고정 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파격 행보는 고이즈미 총리를 전후 3번째 장수총리로 만든 원동력이다.

이렇다 할 정치적 기반 없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잡은 점과 국정의 최우선 순위에 ‘개혁’을 올려놓은 점에서도 두 정상의 정치 스타일은 닮았다. 정치적 곤경에 빠지면 우회하기보다 정면 승부로 돌파구를 찾는 것도 비슷하다.

고이즈미 총리가 집권 후 지지율 정체 현상이 나타나자 2002년 9월 평양을 전격 방문해 북-일 정상회담으로 인기를 회복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

선거 때마다 적절한 화두를 던져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고이즈미식 정치’의 특징. 2001년 자민당 총재 선거 때는 자민당의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이 퍼진 점을 간파해 ‘자민당의 낡은 체질을 깨부수겠다’는 구호로 바람을 일으켰고 이번엔 개혁을 내세운 중의원 해산으로 선거 흐름을 휘어잡았다.

재계를 개혁의 지원세력으로 활용하는 점은 노 대통령과 다른 점이다. ‘개혁’의 성격이 다른 이유도 있지만 장기집권 토양에서 성장한 고이즈미 총리가 기득권층과도 교감을 나누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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