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일주/0711~0719]바티칸의 구조 경이로워…

  • 입력 2005년 8월 25일 14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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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1일 : 바티칸 관광

아침부터 비가 쏟아진다. 전날 스치듯 바라본 바티칸의 모습에 더욱 큰 기대와 설렘을 가졌는데 관광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로마 속의 또 하나의 작은 나라인 바티칸에 들어오는 순간, 국경(?)을 넘자마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며 하늘이 갠다. 아마도 이것 역시 바티칸에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축복일 것이라.

로마에 들어와 과거 건축술에 매번 놀라지만 특히 이곳 바티칸의 구조는 경이롭다.

광장 양 옆을 4열로 둘러쌓고 있는 열주(백색 대리석 기둥)를 광장 한 가운데 첸트로(Centro)에서 바라보면 모두 겹쳐져 하나의 기둥이 된다. 마치 나를 중심으로 모든 열주가 대열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성 베드로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와 그 화려함을 자랑한다.

하기야 미켈란젤로며 라파엘로와 같은 거장의 손길이 그 가치를 더욱 높였겠지만 오랜 세월을 바라보고 만든 이 건축물의 설계와 신앙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곳은 마치 공항 보안검색을 방불케 한다.

가방검사며 소지품까지 거기에 복장검사까지 하니 역시 세계최고를 보기는 쉽지가 않다.

셋 모두 입고 간 반바지를 엉덩이 반까지 걸쳐 최대한 내려 입고 겨우겨우 통과, 저번 빈 오페라사건과 같이 반바지 때문에 퇴짜를 맞을까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조금은 안심이다.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며 그림으로만 보이는 이 벽화들이 손톱만한 대리석을 새겨 넣은 것이라니 열린 입이 닫히질 않는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먼저 봐야 할지 결정을 할 수가 없다.

저 한쪽 구석에 미켈란젤로의 최고의 작품, '삐에따'상(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슬픔을 표현한 작품)이 보인다.

미켈란젤로가 유일하게 자신의 서명을 새겨 넣은 '삐에따'.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이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께서 그 어느 것에도 자신의 작품임을 나타내지 않았는데 보잘 것 없는 자신이 교만하게 서명을 할 수 없다는 종교적인 깨달음이 그 이유이다. 그런 깨달음이 있기 전에 만든 이 작품은 아무도 자신이 이 위대한 조각의 주인임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서명을 한 것이라 한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아들을 자신의 무릎에 눕혀 가장 슬프지만 또 겸허히 바라보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

구겨진 옷 주름 하나하나, 이미 죽은 예수님의 축 쳐진 몸,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 이 모든 것이 돌을 깎아 만들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조금 더 가까이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막아놓은 유리가 아쉬움을 더한다. 하기야 과거 정신 나간 조각가가 망치를 들고 와 조각상을 내리친 적이 있다고 하니 유리는 이 위대한 조각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다시 보고 또 다시 봐도 성당 안은 놀랍고 경이롭다.

허기진 배를 길거리 샌드위치로 대충 달래고 옆에 있는 바티칸 박물관을 향해 간다.

이곳엔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또 하나의 최고의 작품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보존되고 있다. 추천을 받고 몇 번의 고사 끝에 작업을 시작했다는 천장화 '천지장조'는 그가 이런 예술적 분야에서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그림이 미켈란젤로가 처음 그려본 그림이라면 믿어질까.

이 그림은 아마 우리에게 구름을 타고 있는 남자와 남자가 서로의 손끝을 내밀고 뭔가를 교감하는 듯한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천지 창조의 일부분인 이 그림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는 그림이다. 총 9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천지창조는 가로 13m, 길이 40m의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약간은 괴팍한 성격의 미켈란젤로는 같이 작업을 시작한 제자들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모두 내보내고 성당 문을 닫은 채 4년 반의 시간에 걸쳐 혼자의 힘으로 이 엄청나고 믿을 수 없는 작품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림 자체의 대단함도 그렇지만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루 종일 드러누워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며 이 작품을 완성시킨 미켈란젤로의 열정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다. 정말 세계 최고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그림.

천지창조와 만나는 한쪽 벽에 또 하나의 대작 '최후의 심판'이 있다.

이것 역시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니 바티칸은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뽐내기 위한 경연장이다.

391명의 인물을 하나하나 다른 동작으로 최후 심판의 날을 그린 이 그림은 예수님의 얼굴을 다르게 표현했다는 이유로 미켈란젤로가 종교재판에 회부될 뻔했다는 뒷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나체로 표현된 것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니 가뜩이나 괴팍했던 미켈란젤로에게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을지. 하지만 더욱 재미있는 것은 자신의 그림을 신랄히 비판했던 인물을 '최후의 심판' 오른쪽 구석의 지옥의 사자로 등장시켰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불만을 표현하는 미켈란젤로의 복수(?)가 무척 재미있다.

이 외에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며 그 동안 책으로만 봐온 세계 명화들을 보니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제대로 보려면 하루의 시간도 모자라겠지만 세계 최고라 불려지는 예술가들의 솜씨를 유감없이 느낀 하루다.

내일 로마를 떠난다는 사실에 왠지 아쉬움이 크다. 넘치는 관광객들로 복잡하고 정신없는 도시임에 틀림없지만 오늘 하루 이곳 로마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린다.

잠자리에 누워 아쉬움에 뒤척이다 언젠가 반드시 로마로 다시 돌아올 것을 다짐했던 트레비 분수로 늦은 새벽 발걸음을 향한다.

텅 빈 트레비 분수를 본 사람이 이 많은 관광객 중 얼마나 있을까. 한쪽 구석에서 진하게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이 이 낭만의 장소를 더욱 빛내준다.

시원한 물소리와 아름다운 조명에 아름다움이 배가 되는 트레비 분수에서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 멋진 도시 로마로 반드시 돌아올 것을 기약해본다.

7월15일 : 니스(Nice) 해변

니스.

이름만큼이나 멋지고 아름다운 프랑스의 해변이다. 이탈리아 서부 해변을 따라 올라오며 이곳 니스에 도착, 그 아름다움이 극에 다란다.

프랑스에 다시 돌아온 기념(?)으로 바게트를 아침식사를 하고 어제 큰 맘 먹고 35유로에 구입한 릴낚시를 둘러매고 해변으로 향한다. 원래 한국에서 낚시를 좋아하긴 했지만 이 넓고 깨끗한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바다 고기를 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기에 약간은 충동적으로 낚시대와 도구를 구입했다.

커다란 바위에 앉아 '천사의 만'으로 불리는 니스 해변에 낚시를 던져 넣고 고기의 입질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이 또 있을까. 하지만 고기의 입질보다도 아름다운 유럽 미녀들의 일광욕을 즐겨보는 재미(?)가 무척 크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유럽에선 가슴을 들어내고 일광욕을 하는 여자들이 무척 많다. 처음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신기하던지. 슬슬 적응될 만도 하건만 아직까지 나도 모르게 시선이 여자들의 가슴을 향해간다.

우리와는 분명 다른 문화겠지만 남의 시선을 그리 크게 상관하지 않는 이들이 멋져 보이기도 한다. 이번 여행을 하며 남들의 시선 때문에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는 그런 못난 모습을 조금은 고쳐볼 생각이다.

분명 이 넓은 바다엔 많은 고기가 있지만 이상하게도 8시간에 넘도록 내 낚시에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로마를 나오며 고추장과 다시다까지 준비를 해왔기에 친구들에게 오늘 저녁 얼큰한 매운탕을 끓여 줄 것을 큰소리로 약속했건만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내 뒤에 앉아 고기가 잡히기만을 기다리는 친구들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부담감이 엄습해온다.

친구들에게 니스의 이 아름다운 경치를 즐겨보라고 권유해보지만 뜨거운 태양아래 8시간을 즐길 만큼 해변이 아름답지는 않을 것이다. 무척이나 따가운 친구들의 시선을 받으며 조용히 낚시를 걷는다.

오늘 저녁, 얼큰한 매운탕대신 남은 야채와 소시지로 저녁을 먹으며 스페인에 들어가기 전까지 반드시 친구들에게 매운탕을 끓여줄 것을 혼자 다짐한다.

7월16일 : Nice-ST.Raphael : 85km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이동하는 요즘이다.

자갈밭으로 넓게 펼쳐진 해변부터 모래와 바위로 이루어진 해변까지 다양한 해변의 모습이다.

니스에서 출발, 영화제로 유명한 깐느를 거쳐 왔다.

생각만큼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해변과 깐느 영화제의 상징 붉은 카펫이 꽤나 멋진 모습을 연출한다. 조금 더 일찍 왔더라면 쟁쟁한 스타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겠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대신하고 있다. 스타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바닥에 있는 스타들의 핸드페인팅으로 달래본다. 영화 '올드 보이'로 수상한 박찬욱 감독과 최민식씨의 핸드페인팅도 있을 법 한데 찾기가 쉽지 않다. 조금은 어색하게 스타들이 밟은 붉은 카펫 위에서 어색한 포즈도 취해본다.

앞으로도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이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이동하게 될 것 같다.

7월19일 : Marseille-Arles : 130km

프랑스의 해변을 따라 이동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 되간다.

역시나 좋은 것도 자꾸 보면 질리기 마련, 극찬을 아끼지 않던 이 해변의 아름다움도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차라리 해수욕이나 하며 이 해변을 실컷 즐기면 조금 낫겠지만 바로셀로나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시원해 보이는 이 바다도 그림의 떡일 뿐이다.

거기에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도 가뜩이나 힘든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

더 이상 탈 부분도 없는 몸은 어느 정도 이 뜨거운 열기에 익숙해졌지만 하루 종일 땀을 흘리고 나면 캠핑장에 들어가 밥보다도 잠자기에 바쁘다. 잘 먹어도 시원찮은데 갈증으로 마셔대는 물이 하루에 3리터는 족히 되니 식욕이 날리 만무하다.

오늘의 목적지는 아를.

아를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고흐로 유명한 도시이다. 자신의 라이벌 고갱과의 다툼으로 자신의 귀를 자른 엽기적인 인물 고흐.

어제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마르세유는 그 크기만큼이나 복잡함이 가득했기에 <별이 빛나는 밤>이 있는 아를을 향해 서둘러 출발하기로 했다.

2시간은 족히 걸려 겨우겨우 빠져 나온 마르세유.

나오는 것도 문제였지만 아를까지 찾아가는 것도 문제다. 지도상 직선거리로는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자전거로 이동을 하는 우리는 돌고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거기에 길은 얼마나 복잡한지 10분에 한번 꼴로 지도를 확인한다.

그래도 신기한 건, 1:200,000의 지도로 용케 길을 찾아내는 동원이.

아마 지도 한 장이면 어느 오지에서도 길을 찾아 나올 녀석이다.

오후 4, 5시면 도착할 거라 예상했던 아를은 생각보다 훨씬 멀다.

7시가 넘어도 도시의 모습은 커녕 넓은 벌판만 이어진다. 거기에 고픈 배는 어찌나 울어대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물로 허기를 달래보지만 헛배만 부를 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다. 점심때 맛없다고 먹다 버린 복숭아가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갖가지 먹는 생각을 하며 겨우 도착한 아를.

눈에 보이는 아무 곳에 들어가 빵을 마구 집어먹는다. 허기가 조금 달래지자 이제야 아를 시내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내일 하루, 아를과 아비뇽에서 어떤 감흥이 있을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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