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대근]돌아온 청계천

  • 입력 2005년 8월 25일 03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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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청계천 하면 아직도 헌책방이 먼저 떠오른다. 1970년대 그곳에는 없는 책이 없었다. 돈도 책도 귀하던 시절, 각종 교과서뿐 아니라 고서(古書)나 외국서적도 싼값에 구입할 수 있었다. 찾는 책이 없으면 주인이 수소문해 주기도 했다. 3평 남짓한 가게에 켜켜이 쌓인 수만 권의 책 중에서 원하는 책을 금세 찾아주는 주인을 보고 내심 놀랐던 기억도 새롭다.

청계5, 6가 평화시장 1층 대로변에는 지금도 50여 개의 헌책방이 늘어서 있다. 청계8가까지 200여 개의 헌책방이 이어졌던 1970년대 전성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남아 있는 가게의 모습은 거의 옛날 그대로다. 주말이면 ‘새로 나온 고서’가 없나 하고 헌책방을 순례하는 단골의 발길도 여전하다.

흔히들 청계천을 보면 그 시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1938년 출간된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에는 그 무렵 서민들의 고단한 삶이 녹아 있다. 빨래터 아낙들, 천변의 노름판과 이발소, 인력거 묘사가 마치 당시의 청계천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 같다.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청계천은 ‘난민 수용소’로 변했다. 판잣집이 들어차고 오물이 넘쳤다. 그래서 차라리 덮어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청계천 복개(覆蓋)공사는 1958년부터 1977년까지 20년간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재건과 성장이란 깃발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모두 덮고 넘어간 세월이었다.

그래도 그때 청계천에서 희망의 싹이 움텄다. 35년째 청계천을 지켜 온 한 헌책방 주인은 “당시 헌책을 찾아 나선 젊은이들의 열정과 꿈이 우리 사회 발전의 기틀이 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반세기 동안 어둠에 묻혔던 청계천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복원공사가 시작된 지 2년여 만에 물길이 열리고,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22개 다리도 모습을 드러냈다. 비가 내려 물이 차오르면 한강에서 잉어 메기 버들치도 거슬러 올라온다. 엊그제 청계9가 두무개 다리 부근에선 백로가 목격되기도 했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이명박 서울시장의 대선 전략과 결부해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사실은 때가 돼서 이루어진 일이다. 개발 독재 시절에 잃어버렸던 자연과 인간을 되찾는 일은 민주화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이 시장은 이런 흐름과 때를 짚어 내 실행에 옮겼을 뿐이다. 처음에는 주변 상인들의 반대가 거셌고 교통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별다른 마찰 없이 공사가 진행된 것도 이런 시대적 요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이 시장의 정치적 야심이 깔려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공격을 받을 일인지 의문이다. 일을 해 놓고 평가를 받는 게 공약(空約)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더군다나 청계천 복원은 그가 아니어도 누군가,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다. 시험 통수(通水)와 함께 밀려든 시민의 발길이 그걸 말해 준다.

이제 청계천은 서울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영화 이외의 한류(韓流)에도 주목하자’며 청계천 복원공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서울의 역사와 지도가 바뀌는 10월 1일, 그날이 기다려진다. 그때 ‘고서점(古書店)의 거리’라도 선포되면 더 좋겠다. 물과 함께 문화가 흐르는 청계천을 보고 싶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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