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中毒 벗어나 ‘투자 확대’ 매진하라

  • 입력 2005년 8월 25일 03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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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오늘 임기 후반기를 시작한다. 이제 전반기 국정에 대한 정권 측의 자화자찬과 국민 속의 혹평을 뒤로하고 국민이 먹고살 일을 생각하자. 노 대통령은 아직도 연정(聯政)과 선거제도 변경을 강조하고, 청와대 참모들은 이를 뒷받침하느라 ‘지역구도 해소가 최우선 과제’라고 내세우지만 대다수 국민은 동의하지 않는다. 민관 합동으로 대규모 여론조사라도 해 보면 알 것 아닌가.

‘문제는 경제’라는 민성(民聲)을 듣지 못한다면 ‘참여정부=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극소수만의 정부’로 해석을 바꿔야 한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 그리고 열린우리당이 ‘우리들만의 참여정부’로 계속 가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정치 중독(中毒)’에서 깨어나 경제를 국정 어젠다의 중심에 둬야 한다. 국민에게는 쌀 한 톨도 만들어 주지 못하는 정치적 어젠다들을 꺼내 국론(國論)만 갈라 놓다가 국면(局面)을 바꿀 필요가 생기면 그때서야 ‘경제에 다걸기 (올인)하겠다’고 되뇌는 식의 ‘경제 중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경제, 민생경제’는 잊을 만하면 가끔 다걸기해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노름이 아니다.

또 지금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는 6억 원이 넘는 집을 가진 사람들에게 세금 많이 물려 일시적으로 집값을 떨어뜨린다고 해결될 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설혹 이달 말에 내놓겠다는 부동산대책으로 집값과 땅값이 다소 안정된다고 해서 경제문제가 한꺼번에 풀리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만은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했지만, 그러는 것이 ‘정치적 상징성’의 효과를 높일 수는 있을지언정 경제 회생(回生)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결코 없다. 사실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병(病) 주고 약(藥) 주는 식이다.

진짜로 경제를 살리려면 이런 식의 부동산정책보다는 단기적이건, 중장기적이건 성장잠재력을 높여 국부(國富)를 키우고 그 바탕 위에서 분배를 개선하는 것이 순서이고 순리다.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가장 시급한 일은 민간기업들의 투자 활성화다. 우리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현재의 경기를 살릴 수 있고 미래의 성장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지금처럼 ‘네 탓’ 타령만 하면서 설비투자를 외면한다면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성장잠재력은 더욱 추락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10여 년째 계속되는 국민소득 1만 달러대의 함정(陷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없는 갈등과 분열을 겪을 수밖에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올해 일본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이 11.6%에 달할 것으로 추계했다. 1991년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투자의 구체적 내용도 아주 좋다. 제조업 투자는 신형 자동차 생산능력 확대, 제품 고도화, 초(超)박형 디스플레이 증산 투자가 주를 이룬다. 투자 목적은 생산능력 확대가 가장 많고 신제품 개발이 뒤를 잇는다. 고유가시대에 대비한 에너지 절감 투자도 크게 늘고 있다. 미래 성장을 대비하는 일본경제의 모습이다.

반면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우리나라의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이 6.3%로 일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한다. 그나마 상반기에 집행된 투자 중 45%는 기존 설비의 개·보수이고 미래를 위한 신규 설비투자는 25%에 그쳤다는 것이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이다. 2001년 이후 설비투자 증가율은 연평균 0.3%다. 중소기업들은 국내에 투자하기보다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해외투자에 나서고 대기업은 현금을 그냥 쌓아두다시피 하고 있다.

투자 부진의 원인은 물론 규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가 정신의 부족’ ‘연구개발투자 회피’ 등도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기업 탓하기’는 기업인들의 투자심리만 더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아시아 경쟁국들은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서 뛰는데 우리는 집안싸움만 해서야 되겠는가. 싱가포르는 국민소득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에 이르는 기간에 설비투자 증가율이 연평균 10.8%에 달했다고 한다. 일본은 7.4%였다. 선진국 진입의 성패는 설비투자에 달려 있음을 말해 준다.

정부는 기업인의 시각에서 투자 애로를 해소해야 한다. 반(反)기업정서와 강성노조, 비싼 땅값과 거미줄 같은 규제 아래서 투자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기업인들도 기존 설비를 땜질하는 수준의 투자에 안주해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고 만다. 설비투자 활성화를 통한 경제발전이 국가 최대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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