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테이프 대체 뭘 품었기에

  • 입력 2005년 8월 25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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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인가, ‘쓰레기’인가.

국가정보원이 1999년 옛 국가안전기획부 비밀 도청 팀장인 공운영(孔運泳·구속기소) 씨에게서 회수해 폐기했다는 도청 테이프 261개의 내용을 놓고 주요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문제의 테이프를 직접 회수한 이건모(60) 당시 국정원 감찰실장은 지난달 언론에 보낸 해명서에서 테이프의 내용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당시 도청 자료는 세상에 공개된다면 상상을 초월한 대혼란을 야기하고,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의 붕괴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핵폭탄이었다”고 말했다.

이 전 실장은 문제의 테이프를 회수해서 일부든 전부든 내용을 직접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천용택(千容宅) 전 국정원장이 23일 검찰 조사를 받고 귀가하면서 테이프의 내용을 ‘쓰레기’라고 일축해 다시 의문이 일고 있다. 천 전 원장은 “테이프의 내용을 일부 알고 있다”며 “밥 먹는 자리에서 나오는 잡담 등 전혀 들을 가치가 없는 쓰레기”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천 전 원장이 꾸밀 줄 모르고 직설적인 성격이라는 점에서 그의 말에 더 신뢰가 간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테이프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공 씨다. 그러나 그는 말을 할 수 없는 처지. 따라서 공 씨를 수사 중인 검찰이 그나마 테이프 내용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테이프 자체가 불법 증거이기 때문에 테이프 내용을 직접 확인하는 데는 상당히 신중하다. 그러나 공 씨에 대한 신문 과정에서 ‘폭발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어느 정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주변의 정황을 살펴보면 일부 테이프는 상당히 심각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회의 붕괴를 초래할 엄청난 내용’이라는 발언이나 상상은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도청 내용이 5∼10년 전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폭발적인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관점에서는 의미가 퇴색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한 검찰 간부가 “테이프 내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면 테이프 내용을 둘러싼 논란은 관음증적 관점에서 좀 과장되지 않았겠느냐”고 말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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