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형경“내 작품이다 확신”

  • 입력 2005년 8월 25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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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형경 씨는 '소설 '외출'을 쓰는 동안 오이와 풋고추 같은 야채들을 아침마다 먹었다. 고소하고, 경쾌하게 아삭거리는 맛, 그런 맛을 소설 속에서 낼 수 있다면 하고 궁리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문학과지성사
작가 김형경 씨는 '소설 '외출'을 쓰는 동안 오이와 풋고추 같은 야채들을 아침마다 먹었다. 고소하고, 경쾌하게 아삭거리는 맛, 그런 맛을 소설 속에서 낼 수 있다면 하고 궁리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문학과지성사
다음 달 9일 개봉하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 ‘외출’과 커플을 이뤄 기획 출간된 여성 작가 김형경 씨의 소설 ‘외출’을 놓고 출판계와 문단에서 조용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본보 24일자 A10면 보도

특히 영화 시나리오를 얼개로 한 이 소설이 정통 문예출판사인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는 점에서 그간 ‘영화의 부록’ 취급을 받아 온 이른바 ‘영화 소설’이 새로운 지위를 갖게 될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영화-소설 커플 창작’은 올해 1월 허 감독의 스태프인 조성우 음악감독이 친구인 문학과지성사의 김수영 주간에게 이 기획을 제의함에 따라 시작됐다. 문학성을 갖춘 작가를 찾기에 문학과지성사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문학과지성사 내부에선 책 출간을 결정짓는 편집동인들 사이에 논란이 벌어졌다. 정통 문예출판사가 영화 소설에 손을 대는 건 곤란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하지만 논의 끝에 결국 출간을 결정하고 2월에 김형경 씨에게 작품을 맡겼다. 김 씨는 1억 원 고료 국민일보문학상 수상작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1993년) 등 심리 묘사가 뛰어난 소설을 발표해 온 중진 작가.

김 씨는 “문학이 영화를 낳는다는 (우월적인) 관계를 역전시킨 발상이어서 난감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본 뒤에 마음을 굳혔다. 인간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는 사랑의 모든 것이 담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써 가다 보니 ‘아, 이건 틀림없이 내 작품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허 감독과는 한 번 만났다. 소설의 배경인 강원 삼척시를 알기 위해 4월에 찾아갔을 때 촬영 중이었다. (제작진과 만나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 외출이 본격 문학작품이냐는 데에는 의견이 갈린다. 우선 “시나리오의 얼개를 원용한 것이며, 그 점에서 독창적인 게 아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영화 외출의 시나리오는 신진 작가 이일 씨가 영화진흥위원회의 공모에 응모한 것을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허 감독이 세 명의 스태프와 함께 버전업시킨 ‘다단계 작품’이다. 소설은 여기서 한 단계 더 진화시켰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23일 첫선을 보인 소설을 읽어 보면 인간 내면의 움직임을 설득력 있게 형상화한 김 씨의 필력이 꽉 배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 점이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얼개가 대단히 극적이고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치명상을 입은 자신의 반려자가 사실은 불륜 중이었음을 알게 된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랑을 ‘보복 불륜의 차원으로 떨어뜨리기를 원치 않는다’는 설정이다.

김 주간은 “시나리오에 없는 많은 것을 창조해 낸 본격 문학작품으로 본다”고 말했다. 영화의 경우 원작이 따로 있다고 해서 감독의 독창성이 낮게 평가되지는 않는다. 외국 영화로는 ‘벤허’부터 ‘밀리언 달러 베이비’까지, 한국 영화로는 ‘잉여인간’부터 ‘웰컴 투 동막골’까지, 소설이나 희곡이 원작이지만 감독의 창의성을 인정받는 영화는 한둘이 아니다. 따라서 소설 외출 역시 그 자체가 쌓은 성취를 충분히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시나리오에 대한 소설 외출의 원작료 지급은 어떻게 될까? 문학과지성사는 “한국어판의 경우 원작료를 지급하지 않는다. 일본어 등 외국어판은 영화사에 상당한 비율의 인세가 원작료로 지급된다”고 밝혔다. 외국에서는 배용준 등이 나오는 영화의 파워가 소설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 결정이다.

권기태 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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