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稅風사건 기록검토 착수…도청내용 수사 신호탄?

  • 입력 2005년 8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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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전기획부와 국가정보원의 불법 감청(도청) 사건 수사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검찰 도청수사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도청 테이프 대화 내용(이른바 ‘X파일’)을 수사하라는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불법 증거’라는 법률적 장애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검찰 내에서는 ‘원칙파(수사 불가)’가 ‘여론파(수사 불가피)’에 다소 밀리는 양상이다.》

▽거세지는 압박=그동안 검찰은 “위법한 증거를 토대로 수사에 나설 수 없다”며 도청 자료에 담긴 삼성의 1997년 대선자금 관련 내용 수사에 선을 그었다.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황교안(黃敎安)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참여연대가 고발한 만큼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는 대답만 되풀이해 왔다.

그러나 삼성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거세지면서 검찰이 더욱 곤혹스럽게 됐다.

천정배(千正培)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서 수사팀을 압박했다.

천 장관은 23일 국회 예산결산특위에 출석해 “만일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못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법에 따라 구체적 사건에 대해 지휘권을 행사할 용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97년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해 “돈을 조성하는 데 있어 배임, 횡령이 있을 수 있고 금액이 50억 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위배될 소지도 있다”며 “당시 수사상황이 어땠는지 점검하고 검토하겠다”고도 했다.

천 장관은 또 이날 ‘삼성 불법뇌물 공여사건 및 불법도청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X파일 공대위)’ 대표들과 만나 “강자 앞에서 굴하지 않고 강력히 검찰권을 행사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샌드위치 신세’=수사팀이 최근 대검찰청에서 1997년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된 세풍(稅風) 사건 수사 기록을 대출해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압박 때문으로 보인다. 도청 자료를 직접적인 수사 단서로 사용하기엔 법적 부담이 큰 만큼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 사건으로부터 수사 단서를 찾기 위해서다.

황 차장은 23일 이와 관련된 질문에 “우리 나름대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소 달라진 뉘앙스다.

대검 중앙수사부(부장 박영수·朴英洙)도 이날 삼성그룹이 2000∼2002년 매입한 채권의 일련번호 5000여 개를 확보해 현금화 여부를 확인 중이다. 이 같은 기류는 삼성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하지 않을 경우 검찰의 ‘생존’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렇다고 검찰이 곧바로 도청 자료 내용 수사에 착수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내부에는 여전히 “한번 원칙을 깨면 앞으로 무원칙이 일상화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

결국 검찰은 ‘샌드위치’가 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처한 것. 설령 검찰이 우회적으로 단서를 포착해 삼성의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를 하더라도 ‘표적 수사’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래저래 검찰의 고민은 깊어간다.

그러나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원칙은 멀고 여론은 가깝다”며 어쩔 수 없이 수사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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