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가입하려 은행 가보니…“펀드, 그까짓 것 대충…”

  • 입력 2005년 8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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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의 투자 성격이요? 그건 우리도 잘 모르죠.”(은행 창구 직원)

“잘 모르다니요. 그럼 어떤 성격인지도 모르고 펀드에 가입해야 하나요?”(고객)

“처음 펀드 가입하시는 분은 어렵게 접근할 것 없습니다. 그냥 수익률 높은 펀드에 가입하세요. 수익률 높은 이 펀드가 좋겠네요.”

17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 은행 영업점. 본보 취재팀이 창구에서 20대로 보이는 여직원에게 펀드 가입 상담을 신청했다.

직원은 안내문을 꺼내더니 “이 펀드가 수익률이 높다”며 가입을 권했다.

그런데 취재팀이 추가 질문을 하자마자 직원은 말문이 막혔다.

펀드가 우량주 위주로 안정적 운용을 하는지, 성장성이 높은 주식 중심으로 공격적 운용을 하는지 묻자 그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펀드가 한 번 투자한 종목을 얼마 동안 보유하는지, 펀드매니저는 누군지를 묻자 “그런 건 안내문에 안 나와 있다”며 당황했다.

‘6개월 수익률’이라고 밝힌 20%가 연 수익률로 환산한 것인지, 아니면 최근 6개월 동안의 단순 수익률인지를 물었다. 직원은 머뭇거리다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연 수익률로 환산한 수치”라고 대답했다.》

간접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펀드 계좌 수는 7월 말 현재 709만 개에 이르며 총수탁액은 200조 원에 육박한다.

펀드 계좌 수는 올해 들어 매달 25만 개씩 늘어나고 있다. 현재 2가구 가운데 1가구가 펀드 계좌를 갖고 있다.

간접투자 열풍의 주역인 적립식 펀드 수탁액은 6월 말 8조 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본보 취재팀이 17, 18일 서울지역 시중은행 영업점 5곳을 찾아 상담한 결과 안내 수준은 형편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창구 직원 대부분이 펀드에 가입하려는 고객에게 주먹구구 또는 엉터리 상담을 하고 있었다.

은행은 고객에게 펀드 가입 금액의 약 1%, 많게는 2%를 판매 수수료로 받는다. 고객이 맡긴 돈을 실제로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보다 갑절이나 많은 수수료를 챙기는 셈.

서울 중구의 한 은행 영업점 직원은 “매월 300만 원을 적립식 펀드에 투자하고 싶다”고 하자 “현재 판매 중인 6개 상품 가운데 아무거나 3개 골라 100만 원씩 분산투자하라”고 성의 없이 답했다. 펀드 성격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다른 은행 직원은 펀드 안내문에 있는 ‘개별 성장주 비중 50%, 배당주 비중 50%’라는 문구에 대한 설명조차 하지 못했다. 이는 펀드가 성장성이 높은 종목과 배당을 많이 하는 주식에 각각 50% 투자한다는 뜻.

또 다른 은행 직원은 주가연계증권(ELS)의 의미를 묻자 “좋은 주식에 집중 투자해 은행 예금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라고 황당한 대답을 했다.

ELS는 투자금의 90%가량을 안전한 채권에, 나머지를 복잡한 금융공학에 의해 만들어진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구조가 어려워 창구 직원이 특히 자세하게 안내해야 한다.

이런 엉터리 상담의 피해는 결국 고객의 몫이 된다. 펀드평가회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해 6∼8월 시중은행이 판매했다가 최근 만기가 된 ELS 가운데 대다수가 은행 정기예금 금리(연 3.8% 안팎)에도 못 미치는 수익을 내고 청산했다.

한국펀드평가 우재룡(禹在龍) 사장은 “펀드에 대한 은행 창구 직원의 무지(無知)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은행이 직원 교육을 강화하지 않으면 엉터리 상담에 따른 고객 피해가 급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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