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X파일’ 파문이후…“삼성 이름대고 식당 예약말라”

  • 입력 2005년 8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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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예약할 때는 ‘삼성’이나 ‘구조본’ 이름으로 하지 말 것.”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 인근 식당의 예약자 명단에서 ‘삼성’이라는 이름이 사라졌다. ‘X파일 사건’ 이후 도청 공포를 느낀 삼성 구조조정본부가 직원들에게 식당예약 지침을 내려 보냈기 때문이다.

구조본의 한 임원은 23일 “최근 본관 부근 식당 입구의 칠판에 ‘구조본 법무팀’이라고 적힌 것을 보고 마침 이 식당을 찾은 언론사 기자들이 바로 옆방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별다른 대책을 숙의하는 자리가 아닌 단순한 오찬 자리였지만 점심 식사 자리도 안심할 수 없어 앞으로 식당을 예약할 때 삼성 직원이라는 티가 절대 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 직원들은 ‘삼성 구조본’이나 ‘법무팀’ ‘기획팀’ ‘홍보팀’ 등으로 예약하던 관행 대신 직원 이름으로 예약을 하고 있다.

구조본의 다른 간부는 “‘X파일 사건’의 내용에 대한 평가는 별도로 하더라도 우리로서는 억울하게 당한 도청인데, 일부 언론은 ‘안기부 X파일’이라고 부르지 않고 ‘삼성 X파일’이라고 부른다”며 “미리 예방책을 만드는 게 최상책이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특히 외부에 잘 알려진 고위 간부들은 식사 장면이 외부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 별관에 있는 태평로클럽을 자주 이용한다. 이 식당은 계열사인 신라호텔이 운영하고 있어 간부들의 식사 장면이 노출되지 않게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안 강도도 한층 세졌다.

삼성 본관 건물은 계열사인 에스원 직원들이 경비를 철저히 해 방문객들이 불편을 느낄 정도다.

삼성 임직원 차량이 아닌 외부 차량에 대해선 차량 트렁크를 열어 달라고 주문하는 것은 물론 탐지 장치까지 들이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비 직원들은 또 본관 건물에 서류나 가방을 들고 출입하는 외부인에 대해서는 직원용 출입카드를 카드인식기에 대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가끔 마찰을 빚기도 한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최근에는 골프도 그룹에서 운영하는 몇몇 골프장에서 회사 임직원끼리만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다른 골프장에 가면 마음이 불편하고 왠지 꺼림칙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삼성에 대한 언론사의 취재도 더욱 어려워졌다. 삼성은 지금까지도 홍보담당 임직원을 제외한 간부 사무실에 대해서는 기자들의 출입을 제한해 직접 취재가 쉽지 않은 기업으로 꼽힌다. ‘X파일’ 파동 이후에는 이런 경향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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