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있어도 불티나게 팔려”…은행, 펀드 기초교육도 안해

  • 입력 2005년 8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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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장도 만나보고 별짓을 다했죠. 그런데 심사가 뒤틀렸는지 우리 펀드는 죽어도 안 팔아주는 겁니다. 은행에서 안 팔아주면 절대 히트 못해요.”

국내 대형 투신운용사 사장의 말이다.

투신운용사는 고객이 맡긴 돈을 주식 등에 투자해 운용하는 회사. 자산을 운용하려면 돈을 모아야 하는데 정작 고객 돈을 끌어오는 역할은 펀드를 판매하는 은행과 증권사가 한다.

이런 실정인데도 정작 펀드 판매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은행 직원들은 기초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고 펀드를 팔고 있다.

본보 취재팀이 만난 은행 창구 직원은 “너무 바빠 기본사항만 알고 판매를 시작하는 게 현실”이라며 “솔직히 우리도 내용을 모르는 펀드를 팔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 은행 위주의 펀드 판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까지 판매된 전체 펀드(195조3386억 원) 가운데 은행권이 판 펀드 금액은 31.14%인 60조8253억 원.

그러나 한국투자신탁, 대한투자신탁, 국민투자신탁 등 이른바 ‘3투신’으로 불리는 과거 전업 투신사의 수탁액을 빼면 은행권의 펀드 판매 비중은 50%를 넘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사실상 ‘증권사의 상품’인 펀드가 은행에서 이처럼 많이 팔리는 이유는 소비자금융 분야에서 은행의 역량이 증권사를 압도하기 때문.

국내 증권사 가운데 영업점이 가장 많은 현대증권 영업점이 135개인 반면 소비자금융의 최강자 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개인영업점만 무려 954개에 이른다.

○ 손놓고 있는 은행

그러나 정작 은행은 “인력이 모자란다”며 판매 직원 교육에 손을 놓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하면서 영업점당 20∼30명이던 직원을 10∼15명으로 줄였다. 직원 수가 10명도 되지 않는 영업점이 태반이다.

직원 수가 줄었지만 취급해야 할 상품은 보험과 펀드 등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업무 전문성이 생길 수가 없는 구조라는 것.

심지어 펀드 상담을 ‘상담 창구’가 아니라 일반 입출금 업무를 보는 ‘빠른 창구’에서 하는 영업점도 있다.

그러나 창구 직원의 펀드에 대한 무지(無知)가 단순한 인력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어차피 펀드 판매의 주도권은 전국적인 영업점 네트워크를 가진 은행이 가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직원 교육을 하지 않아도 펀드는 잘 팔리기 때문에 은행이 굳이 판매자 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

또 은행은 시장 분석을 전담하는 리서치기관을 보유한 증권사와 달리 증시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시장에 대한 독자적인 시각이 없으니 고객에게 천편일률적인 펀드 가입을 권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수십 년 동안 ‘정해진 금리’의 예금 상품만을 팔아온 직원들이 실적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실적 배당 상품’ 구조를 잘 알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 고객의 손실 우려

다른 문제는 최근 펀드 판매 경쟁이 가열되면서 각 은행이 지나치게 ‘시장 점유율’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

펀드평가회사 제로인의 이재순(李在淳) 조사분석팀장은 “외국은 펀드 하나를 유치해도 직원에게 상품 전체의 구조와 특징을 완벽히 숙지시킨 뒤 판매를 시작한다”며 “국내 은행은 고객 수익률보다 시장 점유율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에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마구잡이로 여러 펀드를 판매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6∼8월 은행권에서 판매된 주가연계증권(ELS)이 올해 만기 때 대부분 정기예금 금리에도 못 미치는 수익을 낸 것도 이런 이유 때문.

본보 취재팀이 영업점을 찾아 물은 결과 ELS의 정의가 뭔지도 모르는 창구 직원들도 있었다.

판매 직원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은행권이 무분별한 점유율 경쟁을 지양하고 고객 수익률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래에셋 강창희(姜敞熙) 투자교육연구소장은 “판매 직원 1명에 대한 교육이 투자자 100명에 대한 교육보다 더 중요하다”며 “은행이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직원을 교육해야 모처럼 형성된 간접투자 문화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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