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승철]MBA는 ‘윤리’와 함께할 때 빛난다

  • 입력 2005년 8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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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석사(MBA)…. 이 단어를 보면 젊은 직장인들은 가슴이 뜨거워진다. MBA란 학위가 도대체 왜 그들을 미혹(迷惑)할까.

MBA, 특히 미국 MBA는 동경의 대상이다. 억대 연봉을 받을 것이란 기대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뉴욕 홍콩 등 국제도시에서도 쉽게 취업할 수 있다는 환상이 들기 때문이다.

미국의 명문 MBA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직장인들이 수두룩하다. 회사의 비전이 보이지 않을 때 그 탈출구로 MBA 유학을 선택하는 이들이 적잖다. 대졸 후 첫 직장은 MBA 진학을 위한 경력용으로 여기는 청년들도 흔하다.

선진국에서 MBA를 받으려 2, 3년 머물면 학비와 생활비로 몇 억 원이 든다. 그래도 그들은 감수한다. MBA는 가히 ‘궁전에 들어갈 수 있는 초대장’이라 할 수 있기에…. 물론 일부 기업에서는 엘리트 사원들을 뽑아 회사 돈으로 보내 주기도 한다.

‘꿩 대신 닭’이라고 선진국 MBA 대신에 국내 MBA 과정에 등록한 직장인도 부지기수다. 야간에 진행되는 국내 경영대학원 석사 과정의 강의 수준은 대부분이 경영학과 학부보다 낮다. 교수들은 주경야독하는 직장인들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기가 곤란해 강의 눈높이를 낮추느라 곤욕을 치른다. 이 때문에 정규 대학원 MBA는 ‘야간 MBA’와 같이 취급하면 불쾌하게 생각한다.

일부 야간 수강생은 학업은 뒷전에 두고 인맥 쌓기에 열을 올리고 학력 업그레이드에 더 중점을 둔다. 직장 상사와 부하가 함께 다닐 경우 부하는 상사 이름으로 낼 리포트와 논문을 쓰기도 한다. 졸업 논문을 전문 대필업체에 맡기는 사이비 학생도 있다. 이런 사람일수록 졸업식 때 석사 가운 입은 사진을 찍느라 더욱 야단이다.

외국 학위와 국내 학위를 결합한 MBA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강의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이뤄지고 외국 학교 강의는 여름휴가 때 현지에 가서 듣는 방식이다.

‘MBA 열풍’이 북한에도 불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최근 MBA 학교인 ‘평양 비즈니스 스쿨’이 첫 졸업생 30명을 배출했다고 한다. 유럽의 다국적기업들이 강사진을 보내 운영하는 이 학교의 펠릭스 앱트 학장은 “북한에 물자를 지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직접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려는 것”이라 말했다.

핀란드 소재 세계 1위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노키아의 차기 최고경영자(CEO)의 아들이 서울대 MBA 과정에서 잠시 공부하기 위해 한국에 온다는 소식도 들린다.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을 알기 위해서인 듯하다.

싱가포르는 미국의 와튼스쿨 등 명문 MBA 학교를 유치해 아시아의 경영 두뇌 메카로 자리 잡으려 하고 있다. 이곳 학교들은 ‘분교’가 아니고 ‘본교’와 똑같다고 주장한다.

MBA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MBA에 대한 열풍은 여전하다. 변호사를 키우는 로스쿨에서도 원래 학업 기간인 3년을 4년으로 늘리고 경영학도 함께 가르쳐 법학 박사 겸 경영학 석사(JDMBA)란 학위를 주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MBA 열풍은 거의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MBA가 고액 연봉과 유능한 경영자로의 변신을 보장할 수 있을까. 아니다. 경영에 대한 기초지식을 익힌 정도라 할까. 변화무쌍한 기업 세계에선 MBA 학위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것 없이도 대성한 기업인들이 허다하지 않은가.

MBA 과정에서 배운 여러 기법을 실무에 응용할 때 윤리 경영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정도(正道)를 걸으며 경영 효율을 극대화하는 능력, 그것이 MBA의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나 혼자 잘살자고 잔머리 굴리는 경영기법은 한계가 금방 드러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큰 사업을 벌이지도 못한다. MBA라 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품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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