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32억 챙기고…소버린 “굿바이 코리아”

  • 입력 2005년 8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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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최초로 대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소버린자산운용이 한국을 사실상 떠났다.

SK㈜에 이어 LG전자, ㈜LG 등 LG그룹 핵심 계열사 주식도 모두 매각한 것.

소버린은 “장기투자와 ‘주주 행동주의’를 통해 한국의 낙후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LG그룹 주식을 사들인 지 6개월 만에 팔아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명분일 뿐 수익을 쫓는 단순 투자펀드라는 점을 일깨워 줬다.

○ LG그룹 주식도 모두 매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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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버린은 23일 시간외 대량매매를 통해 LG전자(지분 7.2%)와 ㈜LG(7.0%) 보유 주식을 모두 팔았다. 이달 초 두 회사에 대한 주식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에서 ‘단순투자’로 바꾼 지 20여 일 만이다.

소버린은 ㈜LG에서는 513억 원을 벌었지만 LG전자에서는 1015억 원의 손해를 봐 전체적으로는 502억 원의 투자손실을 입었다. 지난달 초 SK㈜ 주식을 모두 팔아 8034억 원을 번 것과 비교해 보면 초라한 성적표다. ▶그래픽 참조

증권가에서는 소버린이 새로운 고수익 투자처를 찾았고 LG전자의 경영실적이 예상외로 나빠져 투자가치가 떨어졌다는 판단을 한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소버린은 2조 원에 가까운 SK 및 LG그룹 주식 매각 대금을 러시아 등 다른 신흥시장에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 소버린은 투자펀드일 뿐

소버린이 SK㈜에서 450%의 놀라운 투자수익을 낸 데는 적대적 M&A 이슈가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SK그룹의 실질적 오너인 최태원(崔泰源) SK㈜ 회장 측과 표 대결을 벌였다는 것이 주가상승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때마침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SK㈜의 빠른 실적 회복도 뒷받침됐다.

외국계 투자자들은 “소버린이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일조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하지만 SK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소버린은 기업지배구조 개선과는 거리가 멀고 단순히 이익을 추구하는 투자펀드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조동근(趙東根·경제학) 명지대 교수는 “소버린 사태는 국내 기업에만 적용되는 출자 규제와 의결권 제한 등 규제체계의 허점과 반(反)재벌정서가 결합돼 외국자본이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고 말했다.

구희진(具熙珍)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소버린이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을 부각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며 “국내 기업들은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중시 정책을 통해 국제 자본시장에서 우호세력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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