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점포를 살려내라” 은행들 인재 총동원령

  • 입력 2005년 8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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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업조직이나 그렇지만 은행도 실적이 나쁜 지점이 있게 마련이다. 이른바 ‘악성 점포’다. 애초 지점이 들어설 때와는 달리 중심 상권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점포도 있고 실적이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노후 점포도 있다. 그렇다고 점포를 무작정 없애 버릴 수는 없는 일. 고객에게 불편을 끼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들은 어떻게 하든 악성 점포를 살려 보려고 애쓴다.》

▼신한은행▼

신한은행 박민영(朴敏永) 전북 익산지점장은 작년 1월 부임했다. 당시 익산지점은 대표적인 악성 점포였다. 입지조건이나 개설 연도가 비슷한 10∼14개 점포로 묶인 평가그룹에서 순위는 2003년 10위.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구도심에 위치해 고객이 별로 없었다.

그는 지점장으로 승진한 뒤 첫 부임지를 돌아본 소감을 “한마디로 울고 싶었다”고 표현했다.

첫해는 그야말로 몸으로 버텼다. 매일 2, 3시간씩 전단을 돌리고 토 일요일에도 출근해 주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올해 초에는 상권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신시가지로 지점을 옮겼다.

그 결과 그룹 내 평가순위는 지난해 8위, 올해 상반기에는 1위로 올라섰다. 전 점포 중에서도 상위 1% 안에 들었다.

신한은행은 신상훈(申相勳) 행장의 아이디어에 따라 2003년 8월부터 악성 점포에 유능한 지점장을 보내는 ‘신한은행 방식’ 인사를 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곳에는 불도저 같이 추진력이 강한 지점장을, 영업 확대의 여지가 적은 오래된 점포에는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지점장을 내보낸다. 반대로 몇 차례 기회를 줘도 번번이 실적을 내지 못하는 지점장은 후선에 배치한다.

박 지점장처럼 지난해 초 17곳의 악성 점포에 부임한 지점장들은 대체로 좋은 성과를 냈다. 그룹 내 상대평가에서 2003년 대비 성적이 좋아진 지점이 13곳이나 됐다.

김종철(金鍾哲) 시너지영업추진부장은 “운이 좋아 ‘옥토’로만 다녀 실적이 좋은 건지, 환경이 나쁜 ‘자갈밭’에서도 잘하는지 지점장들을 테스트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국민은행은 6개월마다 한 번씩 1100여 개 지점의 실적을 종합 평가해 5등급(S, A, G, C, D)으로 나눈다.

2년 동안 4차례 평가에서 한 번도 S나 A등급을 못 받으면 ‘성장 정체점포’로 분류돼 특별관리를 받게 된다.

다음 달부터는 엄선한 세일즈 매니저 100명을 2인 1조로 짝 지워 이들 악성 점포에 3주씩 파견한다.

금융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판매능력도 인정받은 이들의 임무는 지점 직원들과 생활하며 영업 노하우를 전수하는 외에 악성 점포의 문제점을 찾아내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 일정한 자리도 없어 여기저기 돌아보며 눈을 번뜩여야 한다.

국민은행 개인영업추진팀 관계자는 “세일즈 매니저를 파견하는 목적은 지점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지 책임을 추궁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적이 부진한 지점으로선 상당한 부담이다. 한 지점장은 “벌써부터 ‘저승사자가 언제 오느냐’고 묻는 직원들이 있다”고 전했다.

▼제일은행▼

제일은행도 갖은 애를 썼다.

2003년 폐쇄를 고려하던 점포 5곳을 대상으로 사내 공모를 했다. 점포를 살려내는 조건으로 승진 등 파격적인 보상을 내걸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은 ‘전사’들이 지점장으로 부임했고 3곳이 살아났다. 2곳은 결국 문을 닫았다.

작년에는 ‘베스트 지점장’ 2명에게 악성 점포를 맡겨 반타작에 성공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명동지점. 연간 보증금 140억 원을 낼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들지만 실적이 부진했던 명동지점의 성적은 상위권으로 도약했다.

1년 반 동안 명동지점을 이끌었던 이상윤(李相允) 지점장은 6월 인사에서 서울 강동지역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지점 직원을 내부 고객으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대한 뒤 함께 명동 상인들을 찾아다니며 발로 뛴 것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제일은행 양승렬(梁承烈) 부행장은 “불리한 입지 때문에 실적을 못 내는 점포도 있지만 더 결정적인 변수는 지점장”이라며 “잘하는 지점장은 어디에 갖다 놔도 잘한다”고 말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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