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국정원장들 집단대응 파장

  • 입력 2005년 8월 23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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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옛 국가안전기획부) 불법 감청(도청) 사건에 대해 김대중(金大中) 정부 당시 국정원장들이 공동대응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전현직 국정원장들의 집단면담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놓고 국정원 감청이 불법인지, 합법인지에 대해 검찰의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대상으로 거론되는 전직 국정원장들이 집단 움직임을 보인 것은 ‘정치공세’라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4시간 동안 격론 벌어져=전현직 국정원장들은 이날 회동에서 ‘불법 감청’이 있었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견을 달리하며 격론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찬(李鍾贊) 씨 등 전 국정원장 3명은 김승규(金昇圭) 현 국정원장에 대해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업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법이 허용하고 있는 합법적인 감청과 도청을 구분하지 않고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도청이 이뤄졌다’는 식으로 어설프게 발표한 것 아니냐”고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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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김 원장은 “전체적으로는 불법 감청이 없었는데, 예외적으로 실무직원들에 의해 불법 감청이 있었다”고 해명했다는 것.

그러나 전직 원장들은 “실무 직원들에 대한 조사도 정확히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며 재차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원장들은 회동 도중 “실무 직원들을 불러 함께 이야기해 보자”는 제안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7시경 회동이 끝난 뒤 국정원 관계자는 “분위기가 좋았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전직 원장들의 반응은 어떠했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피했다.

전직 원장들은 면담 후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헤어졌으며, 연락이 닿지 않았다.

▽왜 모였나=전직 원장들은 이번 사건의 본질이 왜곡돼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5일 국정원의 자체 조사 결과 발표 후 도청 사건의 발단이 된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 안기부의 도청보다는 자신들이 타깃이 되고 있다는 것.

이 같은 공동 대응에는 국정원 발표 이후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지’를 표시했다는 것이 이들 측근의 전언이다. 김 전 대통령 측은 ‘사전 조율설’을 부인했지만 전직 원장들은 사전에 김 전 대통령과 의견을 나눈 것으로 보인다.

▽전직 원장들 오해받을 행동 말아야=양측 간 일부 오해가 풀린 대목도 있어 보이지만 근본적인 갈등은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여전히 “예외적이지만 불법 감청이 있었다”는 입장이고, 전직 국정원장들은 “우리들이 모르는 ‘예외’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불법 감청은 없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

전직 원장들은 25일로 예정된 국정원의 추가 조사 결과 발표와 검찰 수사 진행 상황 등을 지켜본 뒤 추가 대응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원장들의 집단 반발로 국정원의 입장은 더욱 어렵게 됐다.

그러나 전직 원장들도 부담이 크다. 검찰 수사에서 도청 사실이 일부라도 확인될 경우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또 그에 앞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건 당사자들이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은 사건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전직 원장들이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오해를 불식하는 길이라는 지적이다.

이수형 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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