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범죄 막기’ 팔걷었다…직원 CD위조등 사고 대책 부심

  • 입력 2005년 8월 2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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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 도심에 있는 한 농협 지점. 점심 교대시간이어서 점포 안에는 직원 4명만 남아 있었다.

점포 출구에 승용차 한 대가 섰다. 이어 가면을 쓴 무장 강도 2명이 큼지막한 가방을 들고 들어와 소리를 지른다.

“모두 꼼짝 마, 고개 숙여, 금고 열어….”

다행히 실제 상황이 아니라 농협이 실시한 범죄 예방 훈련 시나리오의 일부였다.

지난달 20일 강원도 동해안 초소에서 총기 도난 사고가 생기자 농협중앙회는 ‘자체 경비 강화 철저’라는 제목의 긴급 공문을 전 지점에 보내고 모의훈련을 실시했다.

농협뿐 아니라 전체 은행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은행 직원이 수백억 원대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위조해 해외로 도주하는가 하면 절도범들이 현금지급기를 통째로 차에 싣고 달아나는 등 안팎에서 범죄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

국민은행은 이달부터 매월 강정원(姜正元) 행장이 주재하는 내부통제 대책회의를 신설했다. 회의에는 상근 감사위원은 물론 부행장, 준법감시인, 본부장 등이 모두 참석해야 한다.

지난달 15일 전산망이 중단돼 3시간 동안 영업이 마비된 데 이어 27일에는 한 직원이 650억 원대의 CD를 위조해 잠적하자 사건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회의가 시작됐다.

김동원(金東源) 전략담당 부행장은 “CD 사건이 발생한 뒤 전 점포를 대상으로 감사를 벌였다”며 “금융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통제 시스템의 ‘허술한 구멍’을 모두 메우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민은행은 금융 사고 예방을 위한 전담팀을 구성하는 한편 구체적인 내부통제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같은 시기 200억 원대의 CD 횡령사건이 일어난 조흥은행도 CD 관리방법을 통째로 바꿨다.

종전에는 창구 직원이 CD를 보관할 수 있었으나 이를 금지시켰다.

또 CD는 창구에서만 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전에는 고객이 원하면 ‘배달’도 해줬지만 이 과정에서 금융 사고가 생길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

국민은행과 조흥은행에서 CD 사고가 발생한 뒤 다른 은행들도 전 점포를 대상으로 일제 점검을 벌였으며 직원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농협은 점포별로 금융범죄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를 세우고 매달 모의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금융 사고는 사고 금액에 관계없이 은행의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준다”며 “하반기 은행권에서는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어느 해보다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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