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들 “도청공포 벗자” 묘안 속출

  • 입력 2005년 8월 23일 03시 07분


코멘트
서울 여의도에 본사가 있는 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A 씨는 최근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다.

A 씨는 “011을 010으로 바꾸면서 뒷자리 번호도 바꿨다”면서 “누가 엿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번호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 사용하던 전화번호 순서를 바꾸는 방식으로 새 전화번호를 만들었다.

이 CEO는 갑자기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는 바람에 지인(知人)들이 겪게 될 불편을 덜기 위해 전화번호를 꼭 알려야 할 사람들에겐 안부도 전하면서 새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있다.

그는 “‘X파일’ 같은 도청 사례는 누구나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널리 알려져 있는 기존의 전화번호는 바꾸는 게 낫겠다는 한 임원의 얘기를 듣고 번호를 교체했다”고 털어놨다.

한 대기업 간부는 “휴대전화도 도청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통신 비밀이 보호되지 않는 것 같아 통화할 때 상당히 신경이 쓰인다”면서 “주변에서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거나 휴대전화를 하나 더 만드는 사람도 가끔 있다”고 전했다.

중소 건설업체의 한 사장도 “CEO들이 느끼는 도청 공포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면서 “비밀을 지켜야 할 비즈니스를 누군가 엿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사정(司正) 당국에 근무하는 한 고위 간부는 휴대전화에 지인들의 이름을 입력해 놓고 잘 모르는 번호가 뜨면 아예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그는 “휴대전화는 가족이나 친구 등 극히 사적인 관계에 한해서만 쓴다”고 귀띔했다.

청와대의 비서관급 이상 간부들은 휴대전화를 걸 때 반드시 ‘발신번호 표시 제한’을 이용해 누가 전화를 했는지 모르게 한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번호를 메모해 귀찮게 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자는 취지다.

삼성의 한 임원은 “우리 회사는 유선전화도 암호 같은 번호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면서 “전화를 받은 사람이 휴대전화에 찍힌 번호를 보고 나중에 다시 전화를 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고 말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