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0년 전두환대장 전역식

  • 입력 2005년 8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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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원수라는 자리는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가족들에게 ‘이제 우리는 불우한 남을 위해서 살아가자’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나 영부인의 발언이 아니다.

1980년 8월 21일 예편을 하루 앞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전두환(全斗煥) 대장의 부인 이순자(李順子) 씨가 전역식 전야제 행사에서 한 말이다.

신군부의 군홧발이 정치무대를 장악한 1980년의 서울에서는 이런 비정상이 일상적으로 가능했다. 헌법상 대통령과 사실상의 국가원수가 따로 있던 시절이었다.

공군참모총장의 건배 제의도 이랬다.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차기 국가원수로 전두환 대장을 추대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전 장군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다음 날인 22일 서부전선 1사단 사령부 연병장에서 열린 전역식은 사실상의 대통령 행사였다.

‘국가수반 경호경비 계획’에 준하는 사전 조치가 취해졌다. 사령부 내 모든 창문이 완전 봉인됐고 주변 일대는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됐다. 전역식 동안 모든 군사훈련이 중지됐으며 행사 요원을 제외한 사병 전원은 내무반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12·12쿠데타로 집권한 ‘전 장군’을 위한 철저한 사주경계였다고나 할까.

전역식 자체는 그보다 더 화려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장), 합참의장, 육해공 3군 총장 등이 참석했다. 사단 이상을 호령하는 2성, 3성 장군들도 말석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같은 달 5일 ‘별 넷’을 달았고 그로부터 17일 만에 군복을 벗은 ‘전 장군’은 전역식 5일 뒤인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시 유엔군총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었던 존 위컴 씨는 훗날 자신의 회고록에 이 전역식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한국의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민간인이어야 하므로 그는 전역할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은 미국의 지지를 얻으려면 헌법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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