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대법관 판결들 “성폭행 상처 경미해도 강간치상죄 성립”

  • 입력 2005년 8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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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대법관은 6월 강간치상죄 사건을 선고하면서 항소심(2심)에서 무죄를 받은 피고인에 대해 유죄 취지 판결을 내렸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한 40대 장교가 길을 묻는 척하면서 14세 여중생을 승용차에 태운 뒤 성폭행을 시도했다. 주변을 순찰하던 다른 장교에게 발각돼 범행은 미수에 그쳤고, 2심인 고등군사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여중생의 상처가 팔꿈치와 무릎이 까지는 정도에 그쳤고, 여중생의 아버지가 합의를 하고 고소를 취하해 강간치상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김 대법관은 “154cm의 키에 몸무게 40kg인 피해자가 건장한 군인과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입은 상해를 경미하다고 할 수 없다”며 강간치상죄의 ‘상해’ 개념을 확대해석했다.

김 대법관은 또 ‘연공서열 파괴’로 인해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된 뒤 적응하지 못하고 업무를 거부한 사원을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직무수행 거부를 이유로 징계면직하려면 사회통념상 고용 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잘못이 있어야 하고 △단시일 내에 징계면직한 것은 재량권 남용이란 게 이유.

이런 일련의 판결은 김 대법관이 대법관에 임명된 직후 “사회의 그늘에 있는 소수자와 약자를 위해 일하는 대법관이 되겠다”고 말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는 평을 받는다.

김 대법관은 3월엔 국내 사업자가 미국 내 도메인 분쟁 해결기관인 국가중재위원회(NAF)의 도메인 이전명령을 받았다 하더라도 국내 법원에서 도메인 반환청구소송을 통해 원상회복을 구할 수 있다는 판결을 했다. 이는 인터넷 도메인 이름에 대한 국내 법원의 재판관할권을 인정한 첫 판례여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0월에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장인은 빨치산 출신”이라고 발언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이원범(李元範) 전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권자들의 ‘알 권리’라는 공공의 이익에 해당된다”며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깼다.

일부 누리꾼과 정치권에서는 “어떻게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에게 그럴 수 있느냐”고 비난했지만, 김 대법관은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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