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뿌리읽기]<241>血(피 혈)

  • 입력 2005년 8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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血은 갑골문에서 그릇(皿·명) 속에 담긴 피를 형상화 했다. 피는 둥근 원이나 세로획으로 표현되기도 했으며, 소전체에 들면서 가로획으로, 해서체에서 삐침 획으로 변해 지금의 血이 되었다. 아랫부분의 皿은 굽 높은 그릇이며, 금문에서는 양쪽에 달린 귀(耳·이)가 표현되었다.

‘설문해자’에서 ‘血은 제사 때 바치는 희생의 피를 말하며, 가로획은 피를 그렸다’고 했고, 조상신을 모실 宗廟(종묘)가 만들어지면 ‘먼저 앞마당에서 희생을 죽이고, 그 피를 받아 집안에서 降神祭(강신제)를 지내고, 그 후 음악을 연주하고, 시신을 들이고, 왕은 술을 올린다’고 한 옛날 제도를 참조하면, 血은 이러한 제사 때 쓸 그릇에 담긴 ‘피’를 그렸다. 이후 제사뿐 아니라 맹약에도 이런 절차를 거쳤는데, 盟(맹세할 맹)에 皿이 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후 血은 血淚(혈루)에서처럼 ‘눈물’을, 다시 血緣(혈연)에서처럼 가까운 관계를, 피처럼 붉은 색 등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血로 구성된 한자는 ‘피’와 관련되어 있지만, 그 기저에는 제사 때 쓸 희생의 피라는 의미가 스며있다. 예컨대 흔(흔·피칠 할 흔)은 血과 半(반 반)으로 구성되었는데, 半이 제사에 쓸 소(牛·우)를 둘로 갈라놓은(八·팔) 모습임을 고려하면, 희생소를 갈라(半) 그 피를 그릇에 담아 바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또 멸(모독할 멸)은 피(血)를 발라 적이 없어지기를(蔑·멸) 저주하는 행위를, w(어혈 배)는 피가 아닌(不·불) 피, 즉 살아 있는 붉은 피가 아니라 맺혀 흐르지 못하는 ‘죽어버린 피’를, v(脈·맥 맥)은 물길처럼 퍼져 흐르는 피(血)의 ‘맥’을 말한다.

하지만 衆(무리 중)은 갑골문에서 日(날 일)과 사람(人·인)이 셋 모인 모습(x·임)으로, 뙤약볕 아래서 무리지어 힘든 일을 하는 ‘노예’들을 지칭했다. 이후 금문에 들면서 日이 目(눈 목)으로 바뀌었는데, 그런 노예들에 대한 감시의 의미가 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일반 大衆(대중)의 의미로 확대되었고, ‘많다’는 뜻까지 가지게 되었다.

하 영 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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