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원 압수수색 ‘쇼’로 끝나선 안 된다

  • 입력 2005년 8월 2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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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어제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도청사건’의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그동안 ‘성역(聖域)’으로 여겨졌던 정보기관이 압수수색까지 받게 된 것은 국정원의 자체 조사 결과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이번 일로 국가정보 역량이 노출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도청 범죄를 저지른 기관에 대한 압수수색은 불가피한 법 집행이라고 본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검찰이 불법도청의 전모를 낱낱이 밝혀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정원은 도청 사실을 고백하면서 “2002년 3월 도청 중단 이후 관련 장비와 자료를 모두 폐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도 “정권이 책임질 만한 과오는 없다”며 수사 결과를 예단(豫斷)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진상 규명을 가로막는 장벽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검찰의 단호한 수사 의지다. 도청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도 검찰은 어느 시기, 어느 정부를 가릴 것 없이 도청의 모든 것을 파헤쳐야 한다. 그래야만 도청 테이프에서 일부 검사가 거명됨으로써 불거진 국민적 불신을 씻을 수 있다. 그러지 않고 검찰이 정권의 눈치나 살피면 이번 압수수색도 결국 ‘쇼’였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국정원도 도청 고백 이후 소극적이던 자세를 바꿔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그동안 검찰 소환에 불응해 온 전현직 국장급 간부들이 조사에 응하도록 국정원이 나서서 설득하는 것이 급선무다. 불법도청 행위가 직무(職務) 범위에 속하는지는 나중에 법정에서 따질 일이고 지금은 불법도청을 누가 지시했는지, 알려지지 않은 도청 테이프가 더 있는지 등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 먼저다.

국정원이 과거에 저지른 범법행위를 밝히는 것은 앞으로 그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은 검찰의 압수수색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부기관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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