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21세기 新고전 50권]<11>노장사상

  • 입력 2005년 8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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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 책과 1988년에 처음 만났다. ‘중국사상이나 고전학 전문가도 아닌 분이 노장사상을 논하다니.’ 처음 품었던 이런 생각은 첫 장을 읽기도 전에 무너졌다. 저자의 뜻은 문헌학적 연구나 사상사적 연구에 있지 않고, 철학의 언어와 논리를 바탕 삼아 노장사상의 보편적 현대적 의미까지 찾는 데 있다. 요컨대 저자는 동서고금의 언어와 생각을 소통시키려 한다. 이런 시도는 저자가 철학을 ‘이성을 가진 어느 인간에게나 가능한 하나의 사고의 차원과 방법’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저자는 노장사상의 보편적 현대적 가치를 이렇게 말한다. ‘인류가 걸어오고 추구해 온 문화와 역사를 맹목적으로 밟아가지 않고 그 의미를 재검토케 함으로써 우리들이 무의식중에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고쳐 나갈 수 있는 정신적 제동장치.’

그런 제동장치로서의 노장사상은 ‘인간의 궁극적 가치를 이 삶에서 딴 곳으로의 탈출이나 자연의 정복에서 찾지 않고 자연과의 완전한 조화에서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우주와 인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새로운 인간관과 인생관을 세워 나갈 수 있게’ 해 준다.

저자는 노장사상을 놀이와 소요(逍遙)를 강조하는 조화와 행복의 이념으로 규정하면서, 그것을 웃음에 빗대어 이렇게 말한다. ‘니체의 인생에는 웃음이 없다. 디오니소스가 웃음을 갖는다 해도, 그것은 뒷맛이 허전한 폭소, 거친 웃음이다. 이에 비해 노장의 인생은 부드럽고 수동적이며, 긴장이 풀린 누그러진 유희이다. 노장의 웃음은 폭소도 아니며, 비꼬인 웃음도 아니며, 자연스러운 허탈의 웃음이다. 착함이 넘치는 웃음이다. 목적도, 긴장도, 조바심도 필요치 않은 놀이가 노장의 소요이다.’

노장이 말하는 무위(無爲)란 무엇인가? 인간이 스스로를 자연과 대립되는 존재로 정립할수록 인간과 자연의 거리는 커지고, 자연은 심각하게 파괴된다. 문화와 지식에 대한 노장의 비판은 존재의 파괴에 대한, 자연과 인간의 거리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 파괴와 거리는 자연을 언어로 표상화하여 왜곡시키는 인위(人爲)의 소산이다. 이에 따라 노장의 무위(無爲)는 인간과 자연, 문화와 자연의 거리를 제거하는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학술적 에세이로 규정하는데, 학문적 글쓰기에 관한 새로운 모색과 실천이 분분한 요즘에 비춰볼 때 하나의 선구적인 모범이라 할 만하다. 전문성의 성채에 스스로를 가둬놓고 바깥을 내다볼 줄 모르는 태도, 대중화의 미명 아래 격을 허물고 수준을 낮추는 데만 급급한 태도. 저자는 그런 지적 암호주의와 지적 포퓰리즘에 빠지는 일 없이, 견고한 전문성에 바탕을 두고 바깥과 격조 있게 소통한다.

이 책은 1980년 첫 출간 이후 18쇄를 거듭해 나왔고 2004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출간 즉시 10쇄 돌입’이니 하는 자극적 광고 문구와 함께 선보였다가 이내 사라지는 반짝 베스트셀러가 많은 현실에서, 25년에 걸쳐 꾸준히 쇄를 거듭한 이 책의 운명은 저자와 책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좋은 책을 찾는 독자와 그런 의미 있는 수요에 부응할 줄 아는 출판사가 함께 만들어 낸 것이라 하겠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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