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풀이야 어떻든 ‘엉덩이의 털’을 쫓는 것이라면 사람이 할 짓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짓이 예사로 벌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군부독재 시절 정권의 촉수(觸手) 역할을 해야 했던 경찰이 그 못할 짓을 맡아야 했다. 물론 범인을 잡기 위해, 또는 용의자를 쫓기 위한 미행까지 ‘못할 짓’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못할 짓’은 독립적 인간의 자유로워야 할 발걸음을 뒤쫓은 데 있다. 그것도 단지 정권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고문을 한 자 역시 정신적 내상(內傷)을 겪듯 미행하는 자 또한 미행당하는 자에 못지않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정신분석학의 분석이다. 결국 독재체제가 나쁜 것은 체제를 지키는 일선(一線)과 그에 저항하는 전위(前衛) 모두의 비(非)인간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그 점에서 민주화란 비인간적인 것의 인간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민주화 정부라는 ‘참여정부’에서도 비인간적인 미행이 자행됐다고 하니 기막힐 노릇이다. ‘8·15민족대축전’ 기간 중 경찰이 보수단체 회원들을 밀착감시하고 뒤까지 밟았다는 것이다. 한 보수단체 대표는 경찰이 붙어 다니다 못해 “어머니가 위독해 급히 시골로 내려갔을 때는 아예 경찰차로 데려다 줬다”고 말했다. 경찰청 측은 “8·15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협조 차원에서 한 일”이라고 둘러댄다. 그렇다면 과거 독재정권이 ‘국가 안위(安危)를 위해 협조를 구한 것’이라고 한들 어떻게 탓하겠는가. 어떤 미행은 안 되고, 어떤 미행은 괜찮다는 식의 발상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민주도, 참여도 ‘엉덩이의 털’이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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