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미행(尾行)

  • 입력 2005년 8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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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尾)는 엉거주춤 서 있는 사람의 엉덩이(시·尸) 부분에 털(모·毛)이 나있는 형상이다. 행(行)은 네거리의 모양을 본뜬 갑골문자로 ‘다니다’ ‘쫓다’의 뜻을 지닌다. 그러니 미행은 ‘꼬리를 쫓는 것’인데 꼬리(tail)가 뒤(behind), 끝(end)의 의미로 확대 해석되면서 ‘몰래 뒤를 밟다’ ‘몰래 뒤를 쫓다’가 됐다고 한다.

▷그 풀이야 어떻든 ‘엉덩이의 털’을 쫓는 것이라면 사람이 할 짓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짓이 예사로 벌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군부독재 시절 정권의 촉수(觸手) 역할을 해야 했던 경찰이 그 못할 짓을 맡아야 했다. 물론 범인을 잡기 위해, 또는 용의자를 쫓기 위한 미행까지 ‘못할 짓’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못할 짓’은 독립적 인간의 자유로워야 할 발걸음을 뒤쫓은 데 있다. 그것도 단지 정권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고문을 한 자 역시 정신적 내상(內傷)을 겪듯 미행하는 자 또한 미행당하는 자에 못지않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정신분석학의 분석이다. 결국 독재체제가 나쁜 것은 체제를 지키는 일선(一線)과 그에 저항하는 전위(前衛) 모두의 비(非)인간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그 점에서 민주화란 비인간적인 것의 인간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민주화 정부라는 ‘참여정부’에서도 비인간적인 미행이 자행됐다고 하니 기막힐 노릇이다. ‘8·15민족대축전’ 기간 중 경찰이 보수단체 회원들을 밀착감시하고 뒤까지 밟았다는 것이다. 한 보수단체 대표는 경찰이 붙어 다니다 못해 “어머니가 위독해 급히 시골로 내려갔을 때는 아예 경찰차로 데려다 줬다”고 말했다. 경찰청 측은 “8·15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협조 차원에서 한 일”이라고 둘러댄다. 그렇다면 과거 독재정권이 ‘국가 안위(安危)를 위해 협조를 구한 것’이라고 한들 어떻게 탓하겠는가. 어떤 미행은 안 되고, 어떤 미행은 괜찮다는 식의 발상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민주도, 참여도 ‘엉덩이의 털’이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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