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된 자와 남은 자, 긴 고통의 세월은 닮았다

  • 입력 2005년 8월 20일 03시 03분


코멘트
19일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해외입양인연대(GOAL) 콘퍼런스에서 김홍일(왼쪽), 박현민 씨가 각각 보육원 및 입양 가정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19일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해외입양인연대(GOAL) 콘퍼런스에서 김홍일(왼쪽), 박현민 씨가 각각 보육원 및 입양 가정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 ‘다른 길’ 두 남자이야기

‘입양이 돼 가정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가정이 없어도 모국을 택할 것인가.’

19일 오후 3시 서울 건국대 새천년관 스카이라운지. 두 한국 남자가 나누는 대화에 50여 명의 입양인 방청객은 눈을 떼지 못했다.

해외입양인연대(GOAL·Global Overseas Adoptees’ Link)에서 주최한 제6차 콘퍼런스의 워크숍 중 하나인 ‘입양과 아동시설 사이, 두 사람의 삶 이야기’.

김홍일(40) 씨는 8세 때 보육원에 들어간 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박현민(미국명 코디 윈터·37) 씨는 보육원에서 자라다 11세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입양과 보육원 잔류로 갈라진 두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김 씨는 “내가 보육원에 맡겨지지 않고 입양됐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김 씨의 누나 두 명은 파출부가 됐고 동생 두 명은 미국으로 입양됐다.

김 씨는 보육원에서의 힘들었던 생활로 지금도 종종 악몽을 꾼다. 그는 “하루라도 선배에게 매 맞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끼니는 고구마로 때웠다”며 “그때마다 입양 간 동생이 부러웠다”고 회상했다.

이에 대해 박 씨는 “입양이 되면 가정이 생기지만 외국에서 자라며 겪는 인종차별에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 시애틀로 입양 간 박 씨는 중고교 시절 언제나 누군가에게 자신의 출신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시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과 같이 미국인 부모에게 입양된 한국인 동생과 “꼭 한국에 돌아가자”는 약속을 했고 1988년 처음 한국 땅을 밟는 순간 그 결심을 굳혔다.

그는 모국의 정취에 이끌려 2001년 귀화했다.

대화를 마치며 김 씨는 “입양인도 깊은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겠지만 따뜻한 가정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박 씨는 “내가 이 나라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GOAL 김대원(金大元·스위스명 웽게라) 사무총장은 “많은 입양인은 자신이 한국에서 자랐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현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의 처지에 감사하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19, 20일 이틀에 걸쳐 열리는 이번 콘퍼런스에서는 입양인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20일에는 ‘한국인과의 연애, 결혼’, ‘영어교사 외 한국 내 취업’, ‘성공적인 친가족과의 상봉’ 등을 주제로 워크숍이 열린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모국의 따뜻한 사랑 보여주세요”

18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해외입양인연대(GOAL) 사무실에서 만난 GOAL 창립자 진인자(미국명 에이미·34세 추정·여·사진) 씨는 “한국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1998년 GOAL을 만든 진 씨는 2003년까지 사무총장을 맡다가 미국으로 돌아간 뒤 GOAL이 주관하는 회의에서 강연하기 위해 한국에 잠시 들렀다.

진 씨는 4세 때 미국으로 입양된 뒤 1996년 마음속에만 있던 모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한국 생활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영어강사 자리와 홈스테이를 약속받고 한국에 들어왔지만 몇 개월간 영어학원 원장의 집에서 파출부 노릇을 해야 했다. 경북 구미시에서 영어학원 강사 자리를 얻었지만 노골적인 차별을 당했다.

진 씨는 모국에서 각종 사기와 멸시로 고통 받는 입양인이 모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단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GOAL을 만들었다. 진 씨는 “모국에 대해 좋은 꿈을 꾸는 입양인을 따뜻하게 대해 달라”고 부탁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