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효남 대검 감찰부장 모친 이길녀씨 칠순맞아 시집펴내

  • 입력 2005년 8월 2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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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한의사였던 아버지는 인민군에 재산을 강제로 빼앗기고 학살당했다. 화병으로 쓰러진 어머니는 곧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혈혈단신 남하해 직업 군인과 결혼했지만 남편은 1961년 5·16군사정변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서른셋 나이에 혼자가 된 그에게 남은 것은 어린 3남매였다.

부산 해운대구 우1동에 사는 이길녀(李吉女·70·사진) 씨는 이달 초 칠순을 맞아 가슴 속 응어리진 한을 한 권의 시집으로 엮어 냈다. ‘사랑이 담긴 그림.’

이 씨는 시집에 광안대교의 밤바다, 동백섬, 태종대, 오륙도 등 제2의 고향인 부산의 모습과 가슴 저린 사부곡(思夫曲)을 실었다.

“서른세 해 동안 나를 지탱한 건 거의 모진 바람이었다/그가 떠난 빈자리에/어떤 이는 내 눈에서 찬이슬 느꼈을 테고/…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황령산 백고지에/판자로 바람벽 한/호얏불 밑에/눈동자 초롱한/삼남매의 어미였으니….”

이 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부산의 황령산 기슭에 손수 판잣집을 지었다. 독학으로 지방공무원 시험을 치러 합격한 그는 25년간 부산의료원 등에서 근무했다.

3남매가 장성하고 생활의 기반이 잡힌 그는 2001년 부산문인협회에 가입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어릴 적부터 소원이던 시작(詩作)에 몰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아랑문화제 전국백일장 우수상, 참여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홀로 3남매를 길러낸 ‘저력’에 대해 “혓바닥 늘어뜨린 싸움개처럼 살았다”고 표현했다. 이 씨의 장남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이었던 문효남(文孝男·50) 대검 감찰부장.

문 부장은 “사범학교에서 러시아어와 일본어를 배운 어머니가 몇 년 전부터는 영어를 배우시더라”며 “나의 어머니는 소녀와 같은 용기와 도전의식을 가진 분”이라고 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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