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탄생서 종말까지…‘비행선, 매혹과 공포의 역사’

  • 입력 2005년 8월 2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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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선, 매혹과 공포의 역사/기욤 드 시옹 지음·박정현 옮김/359쪽·1만8000원·마티

오늘날 비행선은 서커스의 코끼리를 연상시킨다. 월드컵 같은 축제가 있을 때나 비로소 광고 문구를 달고 천천히 유영하며 나타나는 이 물체는, 거대한 몸체를 자랑하며 저속 비행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나 유용할 뿐이지 그 밖의 기능에선 다른 운송수단들에 판정패를 당한 지 오래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정이 그랬던 건 물론 아니다. 1930년대 말까지도 비행선은 수송 능력, 전투 능력, 속도, 경제성 등 모든 면에서 비행기와 우열을 겨루는 강력한 맞수였다. 특히 독일이 처음부터 이 분야의 기술 주도권을 갖고 있었기에 비행선은 빌헬름 시대의 독일 제국과 바이마르 공화국, 제3제국을 거치면서 ‘독일 기술과 정신력의 상징’으로 각광을 받았다.

저자는 시종일관 ‘어떻게 해서 이 기계는 대중의 상상력에 그토록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까’라는 면에 초점을 맞추고 의문을 풀어 나간다. 1940년 히틀러가 비행선에 대한 ‘사형 명령’을 내리기까지 이 기계는 모더니티(근대성)의 상징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거대한 몸집과 유연한 자태로 20세기의 개막과 함께 근대성 및 진보정신의 상징으로 부각된 비행선. 당시 이 분야 설계의 최고 권위자였던 체펠린 백작의 공로 덕에 ‘독일 정신’의 상징으로도 각광을 받았다. 1900년대 초 독일의 담뱃갑에 그려진 체펠린 비행선. 사진 제공 마티

1930년대 초반 유럽에서 열린 (비행기의) 에어쇼는 기껏해야 6만여 명이 관람했지만 비행선은 그냥 떠 있기만 해도 그 배가 넘는 사람을 끌어 모았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비행선에 폭격을 당하던 연합군 측 주민들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비행선을 구경하기 위해 방공호를 뛰쳐나오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그 인기 비결은 어려운 데 있지 않았다. ‘브루클린 다리에서 로켓 발사대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전반기에 대중을 압도했던 ‘기술적 거대주의’가 비행선을 대중의 스타로 끌어올린 주역이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1937년 나치 휘장을 단 ‘힌덴부르크’호가 미국 뉴저지 주에서 폭발해 3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빚어진다. 많은 사람이 이때를 ‘비행선 시대의 장례식’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때까지 비행선의 잦은 폭발은 오히려 이 기계를 기술적으로 상승시키고 대중의 관심을 더욱 고조시키는 촉매제였다.

실제로 비행선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은 나치 지도부의 전략적 판단 때문이었다. 히틀러와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비행기의 비약적 발전이 비행선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다. 히틀러는 대프랑스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 교육적 목적을 제외한 모든 비행선 프로그램을 폐기하라고 명령했다. 의미도 몸집도 거대했던 근대의 상징물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원제 ‘Zeppelin! Germany and the Airship, 1900∼1939’(2002년).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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